조선왕조실록, 600년 보존 비밀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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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서고.

▶ 실록포쇄제명. 서고에서 실록을 꺼내 말리는 작업을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6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전해 올 수 있었을까. 그'비밀'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은 1년여간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실록을'해부'하는 작업을 벌여 왔다. 손상된 일부 실록의 복구 방안을 찾고 장기 보존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우선 조선시대 당시 실록이 어떻게 제작됐고 또 어떻게 관리했는지 정밀한 역추적 작업을 벌여왔다.

이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흔히 당시 만들어져 온전히 전해진'유일본'으로 알려진 실록이 사실은 후대에 꾸준한 개보수를 통해 유지돼 왔다는 것이다. 규장각 신병주 학예연구사는 "조선 전기부터의 원본으로 알려진 '정족산본'중에도 군데군데 후대에 새로 만들거나 보수한 책들이 끼여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제작과 보관에 아무리 완벽을 기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되거나 사라진 책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만큼 꾸준한 개보수가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실록을 보전하기 위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했던'기록 정신', 그리고 수백년전의 일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격했던 관리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실록보존팀은 이같은 내용의 1차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곧 발간할 예정이다.

◇엄격하고 치밀한 관리체계=흔히 실록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4서고 체제'를 든다. 실록을 한 곳에 모아두는 대신 지방 곳곳에 서고를 만들어 각각 보관함으로써 화재 등의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을 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리스크 헤지'방식은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실록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각종 문헌을 통해 조선시대 실록의 제작.보관의 전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신 학예사는 "조선시대의 실록의 제작과 관리는 단순한 서책 제작과 보관을 넘어선 국가적 대역사였다"고 강조한다. 단지 분산해 놓는 차원을 넘어 고도의 관리체계가 뒷받침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당시 실록 제작과 보관과정에서 남긴 기록들은 연구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다. 대표적인 것이 '실록청 의궤'.조선시대에 실록을 편찰할 때는 실록청이란 임시관청을 만들었다. '실록청 위궤'는 말하자면 이 실록청이 남긴'백서'로 실록을 제작해 서고로 봉안하기까지의 전 과정은 물론 투입된 물자와 투입된 인원까지 세세히 기록해 뒀다.

사후관리도 마찬가지다. 지방 서고의 실록들은 매 2~3년마다 꺼내 바람에 습기를 말리는'포쇄'과정을 거쳤다. 이때도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전 과정을 감독했다. 그리고 다시 실록의 보관상태를 소상히 점검해 '실록형지안'이라는 문서를 남겼다. 신 학예사는"당시의 상황이 워낙 상세히 기록돼 있어 책을 따라 실록 제작 과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팀은 현재 손상 정도가 너무 심해 복구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실록의 경우 장기적으로 의궤의 내용을 토대로 한 복제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

◇꾸준한 개보수=물론 당시라고 모든 과정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종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이'밀랍본'이다. 종이에 밀랍을 입히는 것은 흔하지는 않으나 당시 중국에서도 활용된 방법으로 특히 벌레에 의한 손상을 막는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존을 위해 사용한 이 밀랍이 지금은 뭉개지고 갈라지면서 오히려 훼손을 가속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실제로 후대에 가면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를 알아 차렸던 것 같다는 것이 연구팀의 판단이다. 종이 전문가인 용인대 박지선 교수는"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에 입히는 밀랍의 양이 줄어들고, 명종실록 이후에는 아예 밀랍을 쓰지 않았다"며"이는 이미 당시에도 훼손이 나타났고, 밀랍이 훼손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훼손되거나 분실된 일부 서책들은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것 처럼 꾸준히 개보수했다. 현실적으로 문화유산을 아무리 철저히 관리한다하더라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길은 없으며,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반증이다. 박 교수는"화재로 파괴된 낙산사에 비유한다면 실록은 서서히'불타는' 일종의 '슬로 파이어'(slow fire)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학예사는 "무엇보다 선인들의 기록을 중시했던 전통과 집념이 실록 보존의 원동력 "이라며 "이는 앞으로 보존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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