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청소년축구 '꽃미남' 백지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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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왼쪽 귀를 뚫어 귀고리를 하는 등 한껏 멋을 낸 백지훈이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구리=최정동 기자

"이런 거 꼭 해야 됩니꺼. 진짜 뻘쭘하네예(쑥스럽네요)."

입을 여는 순간, '꽃미남'은 '시골 청년'으로 바뀌고 말았다.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20세 이하) 나이지리아전에서 그림 같은 역전골을 터뜨려 '얼짱 스타'로 뜬 백지훈(20.FC 서울). 사진기자가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하자 어색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싫지는 않은 듯하다. 네덜란드에서 돌아와 팀에 복귀한 백지훈을 22일 FC 서울 훈련장인 경기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텀블링 골 뒤풀이하려고 했는데…"

"4강 이상 가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는데 16강도 못 들어 죄송할 뿐입니다." 백지훈의 얼굴에는 아직도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2년 동안 이 대회를 위해 고생했고, 주장을 맡아 책임감도 컸던 터라 더욱 속이 쓰리다.

"16강도 못 들어 죄송합니다"

나이지리아전 역전골 얘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진다. "경기 막판에 비가 왔어요. 주영이가 슈팅 때리는 순간 공이 골키퍼 손을 맞으면 왼쪽으로 쭉 미끄러질 거라 생각하고 그쪽으로 달려갔죠. 골키퍼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왼쪽 공간을 보고 때렸는데, 엄청 잘 맞았어요. 공이 안 보여 안 들어갔구나 싶었는데 동료가 환호하면서 달려오데요. 워낙 정신이 없어 준비했던 골 뒤풀이도 못했어요." 뭘 준비했었느냐고 물었더니 한동안 우물쭈물 얘기를 안 하다 "텀블링 같은 거요. 고종수 선배같이 멋지게는 못하지만 약간 어설프게라도 하려고 했죠"라고 대답했다. 지금 다시 차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자 "못 넣을 것 같아요. 진짜 운이 좋았죠"라고 실토(?)한다.

#싸이월드 1촌 맺기 3000명 대기 중

백지훈은 잘생겼다. 크고 시원한 눈, 또렷하게 솟은 코, 가지런한 치아 등 흠잡을 데가 없다. 본인은 "어떨 때는 잘 생긴 것 같은데, 어떨 때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만 은근히 자신의 외모를 의식한다. 한때는 쌍꺼풀이 좋아 보여 눈에 그려 넣기도 했는데, 요즘은 쌍꺼풀 없는 남자가 인기라는 말에 이대로 만족하기로 했다. 신세대답게 '싸이질'(싸이월드에서 개인 홈페이지 꾸미기)에도 열심이다. 셀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려 놓기도 하고, 자신의 감상을 적은 글도 정기적으로 올린다. '1촌 맺기'(친구로 등록해 각종 정보를 나누는 것)를 한 사람은 300명 정도이고, 현재 3000여 명이 대기 중이다. "누구는 해 주고 누구는 안 해 준다"는 얘기가 나올까봐 잘 아는 사람만 등록해 주고 있다고 한다.

화려한 외모에 옹골찬 꿈

#진주.풍기.안동.광양 찍고 서울로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백지훈은 골목 축구를 휩쓸던 개구쟁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진주 봉래초로 스카우트돼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워낙 깜찍하게 공을 잘 차서 경남북 일원에서 소문이 났다. 안동고에서 일찌감치 그를 점찍어 인근 풍기중으로 스카우트했다. 청소년대표팀 단짝 김진규(주빌로 이와타)와 이때 만났다.

"풍기중에 갔더니 '경북에 엄청 무식한 애가 있다'고 해요. 강구중의 진규였는데, 실제로 보니 진짜 크고 무식하게 보이더라고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기에 '골치깨나 아프겠구나' 싶었는데 겪어 보니 그렇게 착하고 좋을 수가 없어요."

백지훈은 2003년 고교 졸업 후 계약금 2억5000만원에 전남에 입단했다. 두 시즌 동안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기를 펴지 못하다가 올해 서울로 옮기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지단 같은 선수 되고 싶어"

1m75cm의 키, 65kg의 체중은 요즘 선수치고는 왜소한 편이다. 백지훈 자신도 "1m80cm까지는 컸으면 했는데…. 나보다 더 작은 선수도 많으니까 만족해야죠"라고 말한다. 22일은 마침 박지성의 맨U 입단이 확정된 날이었다. "부럽긴 하지만 아직 해외 진출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라고 뜻밖의 얘기를 했다. K-리그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국가대표로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릴 거라 생각한다.

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그라운드의 예술가' 지네딘 지단(레알 마드리드)이다. 그의 개인기와 카리스마를 좋아하고, 그처럼 철저한 자기관리로 오래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화려한 외모 속에 옹골찬 꿈을 감추고 있는 선수, 그가 백지훈이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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