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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혈전|쌀파동계기로 본 「국제상인」들의 생리와 실태<1>|곡물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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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쌀도입을 둘러싼 6백만달러의 커미션설은 국제상전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영리를 쫓는 국제상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고 가혹하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한국도 국제상전에 휘말리기도하고 뛰어들기도 한다. 6백만 달러 커미션설을 계기로 한국을 둘러싼 국제상전을 벗겨본다. <편집자주>
국제곡물메이저의 검은 손길에 한국정부가 걸려들었다.
세계 곳곳에 정보망을 깔아놓고 인공위성을 이용, 작황을 살피면서 곡물로 부를 추구하는 국제곡물상. 정부의 해명대로라면 이들의 추악한 상전에 한나라의 공공기관이 농락당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의 사업을 방해하면 폭력·살인도 하고 어떠한 모략도 서슴지 않는 거대한 국제기업의 실상이 우리앞에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도 헛점이 없었던 것은 아닌 듯 싶다. 수단·방법을 가리지않는 곡물상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생리를 좀 더 자세히 알았어야 할 것이며, 호락호락한 인상을 준것은 아닌가. 설사 80년의 대흉작을 당했지만 한국이 엄청난 쌀을 구입하겠다는 인상을 노출해 국제곡물상들이 자기들 상전의 「훌륭한 봉」이라는 확신을 갖게한 것도 사실이다.
또 이번사건의 대상이 공공기관이니까 결백하면 부인만으로 끝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민간기업이었다면 아마도 하루아침에 거덜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냉해로 농사를 망쳤던 80년10월22일. 농수산부 고위관리 2명이 극비리에 김포공항에서 동경행 비행기를 탔다. 높은 곳의 특명에 따라 일본과 미국에서 약2백만t(1천4백만섬) 이상의 쌀을 도입하기 위한 특사자격이었다.
당시 최종 집계된 우리나라의 쌀작황은 2천4백60만섬. 이대로라면 다음해에 1천7백만섬 정도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섰고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도 이를 국제시장에서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결론이었다.
그것도 극비리에 추진하지 않으면 국제쌀값의 폭등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자신들이 탄 비행기무게보다도 무거웠다.
2시간 뒤 동경에 들어선 일행은 일본농림성차관을 찾았다. 흉작으로 일본에서 쌀 1백만t(약7백만섬)을 수입하겠으니 팔라는 뜻을 전했다.
차관은 쌀재고는 있으나 제3국에 쌀을 팔때는 미국의 양해를 구해야한다는 미·일간 곡물협정때문에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일행은 『미국의 양해는 우리가 따낼테니 그 점은 걱정말고 쌀만 팔라』고 설득, 일본측은 못이기는체 『그렇게 해주면 쌀을 팔겠다』고 동의한다.
일행은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미국에서도 역시 농림성차관을 만나 2백만t이상의 쌀이 필요하다는 점과 우리의 구미에 맞는 미국산 칼로스와 일본산을 각각 1백만씩 사겠으니 일본에서 사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상대의 태도는 단호했다. 일본쌀은 규정대로 4만5천t만 사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산쌀을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미국정부의 상전법이었다.
그러나 미국산쌀중에는 우리 입맛에 맞는 칼로스는 1백만t, 그밖에는 찰기가 거의 없는 남부쌀이다. 쌀이 부족해 수입을 하기는 해야하나 입맛에 안맞는 쌀을 그렇게 많이 사들일 수는 없었다.
일행은 남부미는 일제 식민통치시대에 한국산 좋은 쌀을 일본이 빼앗아가고 대신 배급해준 안남미와 같아 국민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자 미국남부출신정치인과 농민단체대표들의 면회요청이 쇄도했다. 쌀사러왔다는 소문을 듣고 남부미를 사줄것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10여일 간 팽팽히 맞선 끝에 간신히 교섭이 이루어져 미국에서 당년에 남부미 20만t을 비롯한 1백20만t, 다음해인 81년에 50만t을 수입한다는데 합의를 보고 일본쌀 l백만t수입이 양해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81년8월말까지 수입하고 그때까지 수송하지 못한 것은 백지화한다는 꼬리가 붙었다. 이것도 미국의 상전법이었다.
우리는 몰랐지만 미국은 한국이 아무리 열심히 일본에서 쌀을 실어가도 항만·하역사정때문에 60만t이상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10여일 뒤 서울종로4가 조달청장실에는 세계유수의 곡물회사대표 또는 중역·로비이스트들이 줄을 이었다.
바야흐로 곡물메이저들의 「활동의 시기」가 온 것이다. 이미 한국이 미국에서 1백만t이상의 쌀을 들여온다는 것은 확인됐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은 곡물도 팔 수 있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한국을 잡아야 한다.
개중에는 예의를 갖춰 값비싼 선물을 선물아닌 것처럼 전달하려 했고, 어느 사장은 자신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와 정중히 『대한민국 조달청장이시다』라고 인사를 올리도록 하기도 했다. 청장의 국내선후배·친구·친척을 보내기도 하고 미국의 국회의원이 직접 찾아와 면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나같이 화제는 쌀이었다.
당시 2백만t이라는 물량은 쌀에 관한 한 최고의 호재임에 틀림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문제가 된 코널을 비롯해 카길·LDC·붕게·미쓰비시·미쓰이 등 20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곡물상들이 조달청앞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바삐 움직였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조달청은 만일 이를 국제입찰에 붙인다면 틀림없이 곡물상들이 담합해 국제쌀값이 폭등하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일단 수의계약으로 도입선을 선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각 곡물상들로부터 응찰서와 비슷한 견적을 받았다. 그러나 최하가격은 t당 5백달러선에서 맴돌았다. 곡물상들은 조달청 및 서로의 비밀을 캐는 일대 정보전을 벌였다.
조달청은 받았던 견적을 백지화시키고 다시 각개협상을 시작했다. 그래도 t당 4백80달러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상담이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한 조달청은 현재로선 값이 안 맞아 쌀을 구매할 수 없다고 공표, 곡물상들은 극도로 조바심을 하게됐다. 그러고는 한달 뒤에 다시 협상을 벌여 t당 4백50달러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이에 앞서 정부는 미국의 곡물메이저 코널과 수의계약으로 80만t을 도입계약했고 같은 수의형식으로 미계의 퍼미, 마크리치, 스위스계의 아그로프롬등으로부터 7개국쌀 1백50여만t을 사들였다.
일본과 대만쌀은 정부베이스로, 호주쌀은 생산조합으로부터, 인도네시아쌀은 꿔줬던 것을 받는 형식으로 도입됐다.
가격도 각양각색. 최고는 FOB로 미국의 백미가 t당 5백10달러선, 칼로스는 4백50달러선, 남부미는 4백49달러선, 일본쌀은 4백40∼4백81달러, 버마쌀은 4백20달러, 대만쌀은 4백3달러, 호주쌀은 4백달러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쌀 거래의 형태와 가격은 나라마다, 쌀의 질과 품위마다, 곡물상마다 각각 다르다. 그러나 극히 정치적이고 비밀스러운 것은 공통된 사항이다. 특히 곡물 메이저의 경우 전세계에 깔아놓은 정보망을 통해 각국의 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따라 틀림없이 파고드는 최고의 기술을 갖고있다.
다만 대두만은 이보다 조금 나아 실수요자인 동방유량·제일제당·삼양유지가 다른 나라의 곡물상을 통해 미국의 선물시장에서 직접 사들인다.
제분협회와 축협이 각각 연간 2백만t이상씩의 밀과 옥수수를 수입하면서도 직접 선물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밖에 안되며 대두3사도 적당한 창구가 없어 다른 나라 곡물상에게 프리미엄을 주고 사는 것이다.
이에 따라 쌍룡·삼성·대우가 이미 곡물부를 두어 세계적인 대곡물상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밖에 3∼4개 종합상사가 곡물부를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그러나 당분간은 매년 20억달러 가까이 곡물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곡물메이저와의 밀고 당기는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신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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