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왕위전] 옥득진 1보 후퇴가 패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구중궁궐, 그러니까 창덕궁 내 깊숙하고 고즈넉한 부용정에서 열린 KT배 왕위전 도전기 2국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바둑 흐름도 신록과 연못이 조화를 이룬 주변의 풍광처럼 완만하고 여유로웠다. 그러나 내면으로는 치열한 쟁투가 빗살처럼 얽혀 있었다.

도전 5번기 1국에서 대마를 잡히며 패배한 정상의 이창호 9단에게 이 한판은 벼랑 끝 승부나 같았다. 무명 신예 옥득진 2단은 예선 8연승에 도전기 1승을 보태 왕위전에서만 무려 9연승.정상은 위태로워 보였고 신예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국이 시작되자 저력과 관록의 이창호 9단이 대국장 주변 변화에 무심할 수 있었던 반면, 옥득진은 생전 처음 겪는 수많은 취재진과 명사들의 관심 등 쏟아지는 시선에 집중력을 약간 잃은듯 보였다. 처음 도전기를 시작할 때와 달리 1국에서 승리한 뒤 우승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도 마음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실전>=스토리는 길었지만 이 판의 승부는 사실상 단 한 수에 결정되었다. 이창호 9단은 점심시간 직전 흑▲로 백의 이마를 두드렸는데 이수가 굉장한 승부수였다.

옥득진 2단은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이 수에 대해 강경하게 맞설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를 놓고 고심한 끝에 백1의 후퇴를 결심한다.

백1은 내 진영을 고수한 뒤 적진은 백3부터 삭감하겠다는 안전책이었으나 A의 급소와 B로 절단하는 맥점 등 맛이 너무 나빠 백진은 지켜지지 않았다. 멀리 우하귀에 도사리고 있는 흑⊙까지 연관되어 백집이 크게 무너지면서 153수만에 항복해야 했다.

국후 이창호 9단은 백1의 후퇴를 패착으로 지목했다. 동시에 흑▲의 강수에 대해 "약간 무리였을까. 두고나서 걱정했다"고 말했다.

<가상도>= 백1로 흑진 속으로 꼬부렸다면 승부는 알 수 없었다. 이 9단은 "어지러운 싸움이고 수상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으며 백은 당연히 이렇게 싸워야 했다" 고 말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