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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개헌론은 대통령에 염장" 김무성 면전서 돌출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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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왼쪽)은 23일 “국회가 밥만 축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오종택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새 암초를 만났다. 지도부 일원인 김태호 최고위원이 23일 돌연 사퇴하면서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7·14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에 이어 3위로 입성한 인사다. 전당대회 당시 두 사람은 ‘러닝메이트’로 비칠 정도였다. 지도부 내에서 가장 우군이 돼야 할 김 최고위원이 상의 한 번 안 하고 느닷없이 사퇴하면서 김 대표 체제에 금이 가고 말았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박지원 의원 등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월권·독재’ 등의 표현을 한 걸 비판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고 혼탁하게 만드는 전형적 과거 정치”라고 했다. 그러곤 “모처럼 어렵게 여야 합의로 정기국회가 잘 돌아가는데 서로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 좋은 분위기 속에 정기국회를 마무리하자”고 당부했다.

 개헌론,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시기를 놓고 청와대와 갈등기류에 휩싸였던 김 대표는 지난 22일 밤에 열린 당 보수혁신특위에서 “대통령과 절대 싸울 생각이 없다”고 몸을 낮춘 데 이어 이날도 당·청 갈등설의 확산을 막으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발의에 당 지도부가 모두 참여하는 결정도 내렸다.

 하지만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 최고위원 입에서 폭탄발언이 나왔다. 김 최고위원은 “국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밥만 축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며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활성화 법안만이라도 제발 좀 통과시켜 달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애절하게 말씀해 왔지만 국회는 오히려 개헌이 골든타임이라며 대통령한테 염장을 뿌렸다”며 “김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경제활성화 법안들을 직을 걸고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최고위원의 예기치 못한 발언에 회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모든 참석자가 김 최고위원을 만류했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의원직 사퇴도 고려하고 있다. 오늘은 작별인사를 하러 나왔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날 저녁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김 최고위원을 다시 만나 사퇴 철회를 종용했지만 김 최고위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최고위원은 경제활성화 법안이 처리가 안 돼 개헌 논의에 대해 박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내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했다고 한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개헌과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는 여당의 피할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인데, 불행히도 청와대와 당이 대립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며 “우선 정기국회에서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후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개헌 논의에 착수하는 데 나의 작은 희생과 노력을 덧붙이고자 한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김 최고위원이 표면적으론 김 대표를 치받았지만 실제론 청와대의 ‘개헌 논의 자제 방침’에 불만을 표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김 최고위원은 당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전당대회 때도 5년 대통령 단임제로 상징되는 ‘87년 헌법체제’의 종식을 강하게 주장했다. 최고위원직은 던졌어도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는 여전한 셈이다.

  김 대표에게 김 최고위원의 사퇴는 큰 부담이다. 만약 최고위원들 가운데 추가 사퇴자라도 나오면 2011년 연말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질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김 최고위원이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새누리당은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를 열어 최고위원을 다시 뽑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 측과 친박계 간에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한 재선 의원은 “김 최고위원의 사퇴 문제를 김 대표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김 대표 체제의 안정화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가영·권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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