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도전 필패 … 한 곳만 정조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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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현민(24)씨는 지난해 말 홈쇼핑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상품의 어떤 점을 부각하면 소비자가 좋아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유통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를 나온 김씨는 올 상반기에 유통업체인 이랜드그룹에 지원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업종 기업들에도 원서를 내봤지만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김씨는 “원하지 않던 기업에도 영혼 없이 일단 응시하고 보는 ‘양치기 지원’을 하면 여지없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후론 진짜 가고 싶은 업종과 기업에 올인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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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는 결심을 곧바로 실천했다. 가구 마케팅에 관심이 있던 그는 이랜드가 운영하는 백화점에 찾아가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가구매장의 판매원들에게 “취업준비생인데 공부하러 왔다”며 주요 고객층이 누구고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를 메모했다. 회사 홈페이지·블로그를 수시로 드나들며 비전과 가치·인재상을 파악하고 직무 관련 상식도 쌓았다. 재직자를 찾아가 인터뷰하며 회사 정보를 모았다.

 지난 5월엔 채용을 전제로 이 회사가 모집하는 인턴에 합격했다. 당시 채용 담당자는 “경험과 직무의 연관성을 잘 살린 자기소개서가 좋더라”고 말해줬다. 인턴 활동을 통해 현장 경험까지 쌓은 김씨는 지난 8월 글로벌전략기획본부 채용이 확정됐다. 그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파악한 뒤 목표 기업을 정조준해 지원하는 게 취업의 비결이었다”며 “특히 적성에 맞는 회사를 연구하면 그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게 뭔지도 명확히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원하는 건 많은 스펙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자기 정리가 된 사람”이라며 “별것 아닌 아르바이트 경험도 진정성을 담으면 화려한 공모전 수상 실적보다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인문계 학과를 나온 대졸자의 취업난이 극심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바늘구멍을 뚫은 이들은 있다. 취업에 성공한 인문계 출신들은 진짜 원하는 일을 서둘러 찾고 소수 선호 기업에 집중해 준비하라고 입을 모은다. 또 가고 싶은 회사에서 직접 일해 본 뒤 많은 양의 스펙을 보여 주려 하기보다 직무 관련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담으라고 강조한다.

 동국대 영어통번역학과를 나와 지난해 9월 현대홈쇼핑에 입사한 정지은(24·여)씨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상품기획자(MD)가 되겠다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웠다. 그는 어학연수 등 스펙 쌓기에 신경 쓰기보다 시장 만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 대학생 마케터로 일하며 소비패턴과 유통구조도 익혔다. 정씨는 “공모전 경험도 없고 외국 한 번 안 갔다 왔지만 직무 역량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서미영 상무도 “선진국에선 구직자들이 실제 취업 전 인턴십 코스를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며 “한국 학생들도 아무런 준비 없이 산업현장에 나가기보다 먼저 직무 경험을 쌓는 게 좋다”고 말했다.

 묻지마 식 스펙 쌓기는 취업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로 꼽힌다. 김봉철 한국외대 경력개발센터장은 “기업은 대단한 스펙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구직자의 전공·경험·노력이 해당 직군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를 따진다”며 “기본적인 어학 능력과 학점을 갖춘 이후엔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저학년 때부터 ‘이 분야에 내가 잘 맞을까, 더 전략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직무와의 연결고리를 만든다면 원서를 조금 넣고도 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진 기자 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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