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동인지 이름은 시대상을 반영〃|평론가 윤재걸 씨. 「동인지 명칭에 관한 연구」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시와 경제」라는 이름의 시동인지가 최근에 나왔다. 젊은 시인들의 모임인 이 동인지는 제1집에서 동인 스스로가 자신들의 동인이름이 시 동인으로는 다소 「몰상식」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의 상황에서 시 작업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언어를 제시하는 일이며 자신들이 「경제」라는 이름을 쓴 것은 「경세제민」이라는 경제 최초의 뜻을 동인들이 모두 동인 이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시대의 문화현상은 모두 그 시대의 산물이다. 특히 시인은 그 시대의 상황과 그에 따른 고통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고 예시한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윤재걸 씨는『신문학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시단에서 명멸했던 많은 시동인지의 이름을 검토해 볼 때 시 동인지들의 이름이 각각 그 시대의 상황과 고통을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있다.
윤씨의「시와 경제」의 태동을 계기로 우리 문학사상 상당한 업적을 남긴 주요 시동인지들의 성격과 그 제호가 갖는 사회와의 상관성을 알아보는 글「동인지 명칭에 관한 연구」를 썼다. 그 내용을 요약한다.
「창조」동인은 1919년 주요한·전영택 등에 의해 이루어진 우리 나라 최초의 동인이다. 이들은 당시 이광수·최남선 등에 의해 주도되던 계몽주의을 배격했다. 동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 속의 문학이 계몽보다는 「인생의 제시」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문학이 구체적인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에 입각했다.
「34문학」은 1934년 이시우·신백수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창간 연도를 따라 무작정 「34문학」이라고 정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의 사조였던 초현실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현실의 질곡에서 잠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일제하의 상황이 드러난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은 해방과 함께 태어났다. 김수영·박인환 등이 주축이 됐다. 그들은 해방이후 이 땅에 불어닥친 새로운 기대와 포부, 내일에의 가능성에 부풀어 있었다.
『…하나의 작품, 한 그룹의 예술활동의 존재이유가 그 시대성을 망각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동인들은 해방과 함께 그들에게 주어진 문화적 과업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 들은 것 같이 보이는 이 동인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들이 문학이 짐 져야할 시대적 사명을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후반기」는 1950년 부산피난시절에 김차영·김경린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후반기」 란 이름은 한 세기의 전반기를 막 지나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을 나타내고 있다. 또 6·25 사변으로 폐허가 된 그들의 주변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허탈감과 공허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후반기」동인들은 폐허상태 속에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한국시의 전형이었던 자연을 노래하는 시에 반기를 들어 후에『한국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상황 의식에 눈뜨고 이를 시로써 노래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신춘시」는 60년대에 들어서는 초입의 4·19와 5·16이라는 역사적 조류와 함께 태어난다. 63년4월 박리도·신세훈 김원호 등 15명이 만든 이 동인은 주권의식과 삶의 자세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때의 동인이다. 이들에 의해 소위 참여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대두되며 신춘문예출신들의 젊은 시인들이 대거 가입하여 힘이 넘쳤다.
부정과 부패, 권력의 아성을 무너뜨린 젊음의 힘이 문학풍토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시문학은 이른바 시인들의 시에서 독자들의 시, 사회의 시로 나아간다.
「현실」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
신동문·구상 등은 현실인식을 보다 투철하게 하자는 것을 자신들의 문학관으로 삼았다.
「신년대」동인은 64년 한일협정반대의 소용돌이 속에 김종해·박진환·백승철 등이 만들었다. 그들은 당시의 사회적 현실과 자신들이 지향하는 문학세계가 무관하지 않으며 새로운 시대의 창조를 위한 참여만이「신년 대의 광장」이라고 선언했다.
「영도」는 6·25의 전화가 멎은 1954년 광주에서 만들어졌다. 박봉우·박성용 등 6인의 동인. 그들은 전후폐허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차갑게 동인 이름에 표현했다. 이들은 제1집을 낸 후 중단되었다가 1966년 다시 복간 하였다. 동인들은 복간 호에서 「영도」라는 개념은 이제 역설적으로 새로운 출발의 개념으로 환치됐다고 선언했다.
황동규·김현·김치수 등의「68문학」은 「34문학」과 같이 결성 시기를 그대로 동인 이름으로 했다.
「70년대」는 60년대가 저물어 가는 69년5월 강은교·윤상규·김형영 등에 의해 나왔다. 마치 제일 먼저 60년대를 청산하고 70년대를 맞이하겠다는 속셈을 가진 것처럼 「70년대」 란 이름을 쓴 이들은 모두 신인들로서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펴보지 못한 아쉬움을 동인지 이름을 통해 반영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기약했다.
76년6월 「반시」라는 엉뚱한 이름의 동인이 정호승·김창완·김명인·이동순 등에 의해 나와 시단의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시라는 이름으로 독자에게 고정관념화 된 시가 아닌 시들을 뿌리 뽑아야겠다는 결의에 찬 이들은 『예술성에 빠져 사회성을 부정하고 자기 현시나 몽환을 즐기는 순수 파』『사회성과 민중성에 빠진 참여 파』를 모두 부정하고 중간적인 새로운 시를 생산해냈다. 이러한 방향모색은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됐고 지난해연말까지 여섯 번 째 작품집을 내놓으면서 80년대 시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고있다.
「시와 경제」는 김정환·홍일선 등이 81년12월에 만들었다. 「시와 경제」는 7O년대의 경제성장이 균등한 분배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았고 오늘의 젊은 시인들이 이것을 자신들의 문제로 삼고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동인지들의 이름은 이같이 사회성과 문학환경의 산물이었다. 시인들은 동인지를 통해 시대와 사회에 대한 발언을 계속 해왔다. 시인들은 때로 실망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투철한 의식으로 시 쓰는 일에 임했다.
80년대에 들어와 나타난 「시와 경제」가 앞으로 어떠한 작품들을 내놓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들 시인들은 계층간의 갈등을 지적하는 한편 시가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의 공통 자산 이어야하며, 시의 귀족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우리 시대의 산물로서의 동인 「시와 경제」가 이 시대의 증언자가 될 수 있기 위해 동인들의 노력이 기대된다. <임재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