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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교원평가제를 거부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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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많은 사람이 한국의 공교육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미국으로, 캐나다로, 뉴질랜드로 보내는 행렬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한국 교육은 이대로 침몰할 것인가. 천만 다행히도 희망의 징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전국의 사범대와 교육대에는 최고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미래 세대에게 꿈을 주는 교직의 매력에 직업의 안정성과 여가를 중시하는 세태의 흐름이 더해진 결과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 사대.교대생들은 전공을 연마하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교육 서비스를 거래할 공급자와 수요자의 자질과 의욕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 한국 교육을 위한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할 일은 오랫동안 사교육에 밀려 낙후된 공교육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당장 불량 공급자를 퇴출시키고, 능력과 의욕으로 무장한 우수한 공급자가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에서 합당한 대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누가 수요자의 호평을 받는 양질의 공급자며, 누가 퇴출 대상인지를 정확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참교사의 수고가 무능.부적격 교사에 가려져 결과적으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 교원평가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정부의 교원평가제는 교장.교감.동료 교사.학부모.학생에 의한 다면평가를 교사 개개인의 능력 개발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인사관리를 주된 목적으로 한 기존의 근무성적평정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원정책평가단이 지난해 교원평가제 도입을 건의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 교원은 입직 단계에서는 우수한 교원들이 선발되고 있으나 재직하는 동안에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게 OECD의 견해였다.

그런데 교원평가제는 교총.전교조 등 교원 단체들의 반발 때문에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는 지난달 교원평가제 공청회장 단상을 점거해 수라장을 만들었고, 교총과 함께 전국 40만 교원 중 25만 명으로부터 반대서명까지 받았다. 교육부는 9월 1일부터 시범실시하겠다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타인으로부터 평가받는 건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교육 개혁에 적극적이었던 전교조조차 교원평가제가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교사를 통제하고 구조조정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하지만 정부나 민간기업의 종사자도 모두 평가를 받는데 버티는 것은 교사의 특권을 인정해 달라는 무리한 주장이다.

교원 단체로선 교원 평가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공교육의 체질을 바꿀 기회로 삼겠다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빈사 상태에 빠진 환자를 회생시키기 위해 수술을 자청하는 열린 마음이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부당한 규제를 포기하고 왕성한 의욕을 가진 공급자와 수요자가 최선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합리성을 제약한다면 한 순간에 불신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정부도 이젠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리의 교원평가제에는 미국.일본 등에서 채택하고 있고, 학부모 단체가 요구한 부적격 교사 퇴출 조치가 빠져 있다. 이런 초보적 제도조차 거부하는 교원 단체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 국민의 70% 이상이 교원평가제를 지지하지 않는가. 정부는 의욕이 넘치는 교사.학생.학부모와 더불어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이하경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