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셀 틈도 없었던 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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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골목에 살며 낯이 익은 젊은 아이엄마가 고사를 지냈다며 팥고물에서 그때까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을 한 접시 얌전히 담아들고 눈이 소복이 쌓이던 얼마전 초저녁에 초인종을 눌렀다. 시집간 딸과 비슷한 또래 인듯 하기에『한가할 때 들러서 차나 한잔 들고 가라』고 했더니 합박 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갔다. 그러더니 오늘 낮엔 두 뺨이 꼭 홍옥처럼 빨갛게 예쁜 다섯살 되었다는 아들아이, 손을 잡고 마을 왔다며 두어 시간 즐겁게 놀다 갔다.
『시골에 계신 친정엄마 같은 느낌이 들어요』하며 얘기하는 모습이 나 역시 사뭇 시집보낸 딸 같다.『연세가 어떻게 되세요』하기에 나이를 대어주니 아득한 세월 저쪽이 차마 상상할 수 없다는 듯한 어투로 『환갑이 세 해 밖에 안 남으셨군요』한다.
부지런히 극성을 부리며 방과 마루할 것 없이 돌아 치던 두 손자 녀석도 저희들 방에서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밤이 늦도록 아랫목에 편히 누워 이것저것 생각에 잠기다 보니 하마 내가 이리도 긴 세월을 살았던가 싶어져 낮의 그 아이엄마처럼 깜짝 놀라진다.
우리 민족의 비극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내 소중한 가정과 내 인생을 절름발이로 지내게 한 저주스런 6·25탓에 요즘 같으면 결혼도 안 했을 젊은 나이로 혼자되어 세 아이 키우다 보니 미처 나이를 곰곰 셀 틈도 없이 벌써 예순을 바라봐야 하다니.
고생스럽고 한이 되고 누구랄 것도 없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아무려나 그렇기만 했다면 어떻게 그 긴 세월을 헤쳐 나왔을까.
메마른 인정이라곤 해도 감싸주고 위로하며 도와주던 이곳 저곳의 많은 이웃과 친지들의 따사롭던 눈길에 위안 받은 적지 않은 경험이 기억에 새롭다.
또『아침에 물준 콩나물 저녁에 보니 한 뼘 자랐다』듯 탈 없이 쑥쑥 자라주어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 몫을 대신하듯 정성스런 아들과, 위하수로 밥보다 죽을 먹어야 하는 시어미 세끼 죽 끓이기에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는 며느리의 듬직한 심성이 환갑을 바라보며 얻은 결실인 것 같아 그저 후회 스럽지 않게 지내온 세월이 고마울 뿐이다.
요즘은 무릎까지 조금 불편하여 방에 들어앉아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잔소리 많은 할머니 옆에서 갖은 시중을 여섯 살치곤 총명 할이만큼 잘드는 큰 손자한테 가갸거겨도 가르치고, 친정엄마 생각나면 아무 때나 들르겠다던 젊은 아이엄마를 멀리 시집보낸 딸 대하듯 하며 지내다보면 몇 년 후 엔 가는 『올해가 환갑이시군요』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오늘 낮처럼 경망스레 놀라진 않을 것 같다.<서울 동작구 대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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