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1000 안착' 복병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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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폭등하는 국제 유가가 3개월 여만에 지수 1000선을 도달한 증시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이틀 연속 '유가 급등 쇼크'로 휘청거렸다. 21일에도 거래소 지수는 4.66포인트 떨어져 980선까지 밀려났다. 20일(현지시간) 뉴욕시장 시간외 거래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8월물 선물 가격이 한때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증시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이 지수 1000대 안착을 늦추는 복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배럴당 60달러시대 눈앞=최근 유가 급등은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정정 불안 ▶헤지펀드 투기 자금 가세 등 여러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중장기적으로 석유 공급이 달릴 것'이란 우려다. 미국.중국 등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들의 수요는 좀처럼 줄지 않는데 비해 산유국들의 원유 증산은 설비 부족 탓 등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우증권 이효근 연구위원은 "2001년만 해도 570만배럴에 달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잉여 생산능력이 최근 들어선 150만배럴까지 확 줄었다"고 설명했다. OPEC도 원유 공급 부족 우려감을 씻어내기 위해 7월부터 하루 생산쿼터를 50만 배럴 늘리기로 부랴부랴 합의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증산 여력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정보청(EIA)도 이런 이유로 당초 '내년도 유가가 올해보다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최근 전면 수정했다. EIA는 대신 WTI의 경우 올해 배럴당 52.30달러에서 내년엔 54.80달러 수준으로 오를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반면 최근 유가 급등은 수급 요인이라기 보다는 약달러를 피하기 위한 달러화 대체 수요에다 계절적인 요인이 겹친 반등이어서 단기간에 그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 증시 파장=1990년대 후반까지도 국제 원유가 급등은 국내 증시를 괴롭혀온 고질적인 악재 중 하나였다. 실제로 90년 7월 배럴당 11달러선이던 중동산 두바이유가 이듬해인 91년 11월 35달러선까지 폭등했을 당시 주가지수는 100포인트 가량 급락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2000년 접어들면서 확 달라졌다. 국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 국내 증시도 덩달아 강세를 보이는 '동조화'현상까지 보인 것. 실제로 지난해 중반 대비 최근 국제 원유는 WTI의 경우 지난해 동기보다 50% 가량 치솟았지만 주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위원은 "2002년 이후 미국의 저금리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국제투자자금이 석유와 글로벌 증시에 동시에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며 "때문에 유가 급등으로 증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현상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은 "당분간 유가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적 개선 효과가 기대되는 정유 종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일 달러 증가에 따라 중동 수주 여력이 커진 건설 종목도 유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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