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이냐" "원한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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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일은행(서울 소공동 76·은행장 안영모) 행장 비서실 폭발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27일 범인이 금품을 노린 단순강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범인의 오른쪽 손에서 채취한 5개의 지문을 감식, 범인 신원수배에 나서는 한편 사고 현장에서 가로 3㎜, 세로 2㎜정도의 납덩이 파편과 쇳조각 10여개를 수거해 폭발물 종류에 대한 수사를 펴고 있다. 이와 함께 경찰은 범인이 은행거래 관계에서 생긴 원한이나 은행장 및 은행직원들과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은행장을 인질, 납치하려고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범인이 비서실에 들어가 숨진 강신학 차장(38)과 임원실 안내양 김수정양(17)과 10여분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돈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이 은행장만을 만나겠다고 요구했지만 ▲범인이 미리 빈 스케이트용 가방과 소풍용 가방 등 가방 2개와 푸른색 보자기 1개를 준비했고 ▲가방 안에 결박용으로 쓸 직경 2㎜의 철사 10여m를 마련했으며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발과 흰 마스크를 사용한 점과 ▲점퍼 호주머니 속에 신분을 밝힐 신분증 등이 한 장도 없는 등으로 미루어 은행장을 폭발물로 위협하고 돈을 강탈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있다.
경찰은 그러나 범인이 은행측으로부터 돈을 빌어 썼다가 갚지 못해 집을 빼앗겼거나 융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해 원한을 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로 ▲범인이 금품을 노렸다면 2층 은행창구 대신 돈을 탈취한 뒤 도주로가 곤란한 16층 비서실을 범행장소로 택한 점과 ▲다른 건물과 달리 청원경찰이 경비를 맡고있어 범행이 어려운 은행을 택한 점 등으로 미루어 채무관계 등 은행거래에서 생긴 원한으로 처음부터 자폭할 의사를 가지고 범행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범인이 대낮 시내 중심 가에서 대범하게 범행을 기도한 점으로 미루어 단독범행보다는 또 다른 공범이 차량 등을 동원, 은행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다 법행 후 도주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범행동기와 함께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집중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경찰은 26일 범인에게서 채취한 지문을 철야로 전과자 4백80만명의 지문과 대조했으나 같은 지문이 없어 범인은 일단 전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21∼37세까지의 남자지문에 대한 대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경찰은 범인이 사용한 폭발물이 폭발력이 수류탄보다는 약한 것으로 미루어 TNT 등을 이용해 만든 사제 폭발물일 것으로 보고 화약을 다루는 광산촌 출신이나 화공약품상 또는 화약취급 군 출신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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