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원칙론 vs 김 대표 현실론, 정치 스타일 달라 조정에 시간 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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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관계가 다시 삐거덕거리고 있다. 지난 13일 김 대표가 방중(訪中) 직전 출국장에서 박 대통령과 통화했을 때만 해도 둘의 관계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 김 대표의 개헌 발언(16일) 파문에 이어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속도를 둘러싼 청와대와 김 대표의 시각차가 드러나면서 급속히 냉기류에 휩싸였다.

 특히 21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을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게 결정타다.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공개 경고를 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두 사람의 불화설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함께한 2004년 이래 둘의 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왔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는 왜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을까.

 먼저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이 워낙 다르다. 박 대통령은 목표가 정해지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진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다. 거래와 타협을 탐탁잖게 생각한다. 반면 김 대표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하답게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정치엔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무대’(무성대장)란 별명이 ‘돈키호테’를 연상케 하지만 실제론 신중한 ‘햄릿’에 가깝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은 ‘원칙’ 대 ‘현실’이란 두 사람 스타일의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린 경우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만 해도 박 대통령은 연금재정 안정을 위해 가급적 빠른 처리를 원하지만, 김 대표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다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도 두 사람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2009년 친이계가 김 대표를 원내대표로 추대하려 했을 때 박 대통령은 “친박계엔 좌장이 없다”며 김 대표의 야심을 억눌렀다. 이번에도 당시와 비슷한 박 대통령의 속내가 읽혀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김 대표가 과시욕을 내보인 것 아니겠느냐”며 “그런 행보가 당 대표로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다 구조적 요인으론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집권 2~3년차에 성과를 내기 위해 지금 마음이 급하다. 개헌론을 그냥 뒀다간 공무원연금 개혁뿐 아니라 경제 살리기, 공기업 개혁 등 각종 국정과제의 동력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당·청 간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친박계가 원내 사령탑으로 있는 내년 5월까지가 국정과제 추진의 골든타임이란 분석도 나온다.

 반면 김 대표와 새누리당은 2016년 총선 승리가 최대 과제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처럼 애써 통과시켜봐야 정치적 이득은 없고 반발만 심한 과제를 서둘러 처리할 마음이 없다. 또 김무성 체제 등장 후 이군현 사무총장, 주호영 정책위의장 등 비박(非朴)계가 지도부에 대거 등장하면서 종전 황우여 대표-최경환 원내대표 체제에서 “청와대가 하라면 한다”고 했던 분위기도 퇴색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나 김 대표 측 모두 지금의 갈등 구도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과거에도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언론이나 제3자를 통해서만 의사교환을 하다 보니 쓸데없는 오해가 쌓인 일이 있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의견이 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하·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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