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축구화 수선 匠人' 김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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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1913∼1960)는 지독히 가난했지만 축구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학창시절 골키퍼로 활약했는데 이유는 많이 뛰지 않아도 돼 축구화를 오래 신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매일 축구화를 검사해 많이 닳았다 싶으면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손자를 때렸다고 한다.

요즘은 모든 게 풍족한 시대다. 웬만한 동네 조기축구회 선수들도 20만원대 고급 브랜드 축구화를 신는다. 찢어지거나 밑창이 닳으면 당연히 버리고 새 것을 신는다. ‘축구화도 구두처럼 밑창이 닳으면 갈아 신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서울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근처에는 ‘금성축구화’라는 간판의 두 평 남짓한 가게가 있다. 김철(56)씨가 20년간 축구화 수선을 해온 곳이다.

가게에는 수십 켤레의 축구화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축구화를 완전 분해한 뒤 비틀어진 모양을 잡아주고, 주문한 사이즈에 맞춰 줄이거나 늘여주기도 한다. 물론 닳은 밑창은 새 것으로 갈아준다. 하루 여덟 켤레 정도 수선하며 켤레당 2만원 남짓 받는다.

김씨의 '축구화 인생'은 4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1947년 함북 부령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내려와 초등학교를 다녔다.

공을 곧잘 찼던 그는 "중학교 가서 운동할래, 아니면 기술 배울래"라는 부모 말에 대뜸 "기술 배울래요"라고 대답했다. 축구부에서 기합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63년부터 신발공장에서 기술을 익혔다. 역도화.복싱화 등 특수 스포츠화 만드는 기술도 그때 배웠다. 이후 축구화 제조.수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범근.황선홍에서 이천수.최태욱 선수까지 한국축구 '황금 발' 중 김씨의 손을 거친 축구화를 신지 않은 선수를 찾기 힘들다. 지금도 'K1'이라는 축구화를 직접 만들어 판다.

지난해 K-리그 최우수선수였던 김대의(성남 일화)는 김씨가 인생 상담을 해준 경우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프로 드래프트 참가 여부를 고민하던 김선수에게 그는 "실업팀에서 몇 년 있다가 몸값 제대로 받고 프로로 가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김선수는 일본 J리그와 국내 실업팀을 거쳐 지금 프로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축구 선수들은 생각보다 발이 작다. 원래 작은 선수도 있지만 워낙 축구화를 꽉 끼게 신는 바람에 안 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국내 축구 스타들의 발 모양을 석고로 뜬 것을 보면 발가락이 굽거나 휘는 등 기형적인 발을 가진 이들도 많다.

"과거에는 선수들 사이에 '10문7(2백55mm)이다'라는 말은 '발에 딱 맞는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기억하는 최고 왕발은 차범근씨였는데 2백80mm정도였던 것 같아요. 축구화를 올바르게 신으려면 발에 맞는 축구화를 고르고, 끈을 너무 세게 조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발이 편하고 뛰기도 좋습니다."

김씨는 요즘 축구화 가격이 너무 비싸고, 또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바람에 자원 낭비가 심하다고 한마디 했다.

"외국에서는 주로 잔디 위에서 공을 차기 때문에 수입 축구화의 경우 재질이 부드럽죠. 또 잘 닳지 않기에 창갈이를 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외국산 축구화를 신고 맨땅에서 공을 차다 보니 빨리 닳게 되죠. 창갈이를 안하면 신발값 대기도 만만찮습니다."

축구화가 젖었을 때는 신문지를 넣어 모양을 잘 잡은 뒤 음지에서 말려야 하고, 신지 않을 때는 구두약이나 콜드크림을 발라놓는 게 가죽 보호에 좋다고 한다.

김씨의 말을 들으며 기자의 왼쪽 엄지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비맞은 축구화를 몇 달 동안 처박아뒀다가 꺼내 보니 가죽이 썩었고, 그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다가 엄지발톱이 두 번이나 빠진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76년에 동갑내기 최옥자씨와 결혼한 김씨는 스물일곱, 스물다섯 난 아들 둘이 있다. 큰 아들은 제대 후 아버지 일을 조금씩 돕고 있다. 아들이 제대로 배워 자신의 가업을 이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김씨는 요즘도 일요일마다 동네 조기회에 나가 공을 찬다. 포지션은 역시 '축구화가 덜 닳는'골키퍼다.

글=정영재,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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