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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토지 보상 16조 '땅·집값 불쏘시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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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가을 충남 당진.홍성.예산 일대는 땅값 상승으로 홍역을 치렀다. 당진군 석문면 석문산업단지 인근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의 대로변 땅값은 평당 30만~40만원에서 50만~80만원으로 1년 만에 100% 가까이 올랐다. 부동산중개업소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땅을 보러오는 외지인의 발길도 잦았다. 딱 부러지는 개발 호재가 없었던 이곳 땅값이 급등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아산 신도시 1단계 토지 보상금 7000억원이 풀렸기 때문이다. 예산의 A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상금을 받은 농민 대부분이 다시 땅이나 건물을 사기 위해 인근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땅값이 크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토지 개발을 하는 공공기관이 땅 주인에게 나눠 줄 보상비는 줄잡아 1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투기 바람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엄청난 규모의 토지 보상금이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투기지역이 서울 강북은 물론 지방 곳곳으로 번져나갈 조짐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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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토지 보상비=토지 개발을 하는 주택공사.토지공사.SH공사(서울시 산하기관).경기개발공사 등 4대 공기업이 지난해 지급한 보상금은 8조5000억원이다. 올해 풀 보상예산도 7조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파주 운정1지구.성남 판교.오산 세교.아산 배방 등의 택지개발을 위해 5조원을 풀었던 주택공사는 올해에도 그린벨트 내 국민임대지구, 파주 운정2지구, 광명 역세권 등에 3조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토지공사는 지난해 판교, 화성 동탄, 용인 죽전.동백지구의 택지사업으로 2조2814억원을 써 2년 전 보상금의 20배를 지출했다. 올해도 용인 흥덕, 화성 청계, 남양주 별내 등에 1조원을 보상할 계획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도 각각 강북 뉴타운 개발과 파주 LCD단지 등에 4조원에 육박하는 보상금을 쏟아붓는다. 통상 4대 기관이 한 해 푸는 보상금이 2조~2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4배의 보상금이 지난해와 올해 집중적으로 풀리는 셈이다. 내년 이후에도 충남 연기.공주군의 행정도시(4조5000억원), 수원의 이의 신도시(3조원) 등 굵직한 보상계획이 대기하고 있다.

◆ 토지 보상비로 땅값 불안=지난해 경기도 파주 운정 1지구에 약 1조5000억원의 보상금이 풀리자 파주 문산.고양.연천 일대 땅값이 급등했다. 파주 B공인 관계자는 "대토(代土) 수요가 급증하면서 민통선 주변은 물론 강원도 철원까지 땅값이 들썩였다"고 전했다. 연천의 한 중개업자는 "보상금이 유입되면서 평당 4만~5만원 하던 농지가 한두 달 새 배 이상 뛴 곳도 수두룩하다. 자고 나면 땅값이 뛸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이후 용인.여주.이천.광주 등의 땅값이 급등한 데는 지난해 지급된 성남 판교 신도시 보상금(2조5000억원 정도)의 영향이 컸다는 게 현지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일부 투자자는 보상금이 풀리면 땅값이 뛸 것으로 보고 미리 인근 땅을 사두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중개업자들은 지적한다. 충남 태안군의 한 중개업자는 "일부 기획부동산(땅을 싸게 산 뒤 전화 등을 통해 비싼 값에 파는 조직)이 대토 수요가 몰릴 지역을 예상해 미리 땅을 사 모으는 바람에 개발 호재가 없는 시골 땅값이 갑자기 요동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토지개발 업체인 JMK플래닝 진명기 사장은 "택지 개발을 할 때 수용지 내 비농업인의 토지보상 방식을 현금이 아닌 채권.환지 등으로 바꿔 보상금이 토지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확산하는 투기지역=2003년 이후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잇따라 나왔지만 토지.주택 투기지역 지정은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 강남권과 행정도시 인근에 국한됐던 투기지역은 최근 들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달 말 부동산가격안정심의회에는 토지 22곳, 주택 12곳 등 34곳이 투기지역 지정 후보로 오른다. 토지의 경우 강북 뉴타운과 청계천 개발 호재가 있는 서울시 8개 구와 경제자유구역 개발 바람을 탄 부산.인천 8개 군.구가 포함됐다. 주택은 뚝섬 개발 호재가 부각된 서울 성동구와 대구 5개 군.구가 후보에 올랐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부동산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1.3배 이상인 곳이 투기 후보지역으로 오르는데 최근 물가상승률이 집이나 땅값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그 숫자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토지 보상금이 쏟아질 때마다 투기지역이 늘어나는 추세를 볼 때 앞으로도 투기지역 지정은 줄지 않을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보고 있다.

정경민.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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