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기업 정서' 위험 수위] (3) 대기업 정서 이중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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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정치권 로비등을 하는 대기업이 깨끗하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서울 K대의 김모(26)씨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졸업하면 대기업인 S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설문조사 결과 한국 국민은 대기업은 싫어하고 중소기업은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게 생각한다'는 응답이 대기업은 42.1%에 그친 반면 중소기업은 75.6%나 됐다. 그러나 취업 선호도는 정반대다.

인터넷 채용정보업체 잡링크의 대졸 구직자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을 선호한다'는 응답자가 40%로 가장 많았으며, 중소기업(10.7%)과 벤처기업(8.7%)을 선호한 사람은 적었다. '대기업은 싫지만 취직하고 싶다'는 이중 정서가 한국 국민에게 뿌리박혀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은 싫다=한국 국민의 반(反)대기업.반재벌 정서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을 '좋지않게 생각한다'는 의견(57.4%)이 '좋게 생각한다'(42.1%)보다 15%포인트 높았다. 재벌에 대해서도 반감(52%)이 호감(44.8%)보다 더 높았다.

한.중.일 3국 중에서도 대기업에 대한 반감은 한국 국민이 가장 강했다. 중국 국민은 불과 12.2%만 '대기업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일본 국민도 대기업에 대한 반감(53%)이 호감보다 많았지만 한국보다는 반감이 적었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 김용열 박사는 "일본은 대기업을 싫어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장기 불황에 대한 불만으로 반감이 높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금융연구소의 장하오(張昊) 박사는 "중국은 대기업이 중국내 광고의 80% 이상을 하고 있는 데다 사회활동도 활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기업의 잘못에 대한 3국 국민들의 견해도 달랐다. 한국 국민들은 기업의 가장 큰 잘못으로 가족경영(28.3%)을 꼽은 데 반해 일본은 정경유착(67%), 중국은 환경오염 등 사회에 대한 무책임성(31.4%)을 1위로 들었다.

◇중소기업은 보호돼야=한국 국민은 중소기업을 매우 좋게 생각하고 있다. 좋게 생각한다는 답변(75.6%)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응답(23.4%)보다 훨씬 많았다.

따라서 중소기업은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84.7%)고 생각한다. 영세상인도 보호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영세상인이 어려워지는 것이 경제에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변이 75.2%나 됐다.

따라서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백화점 등의 셔틀버스를 운행금지한 것은 잘한 일(68.2%)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대형할인점 등이 커지고 영세상인이 어려워진 것은 국민들의 소비 선택 때문"이라면서 "그랬던 국민들이 영세상인의 생활 기반 상실을 큰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큰 것'에 대한 반감 또는 평등주의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경유착과 변칙상속 등이 재벌과 중소기업 중 어디가 더 심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재벌이 더 심하다'는 답변이 70.8%나 됐다.

'경영투명성과 지배구조는 어디가 더 나은가'에 대해 재벌은 16%에 그친 반면 '중소기업이 낫다'는 33.9%나 됐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박사는 "경영관행이나 투명성 등은 이해관계자가 많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나을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중소기업이 낫다는 것은 대기업에 대한 반감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보호방식은 한.중간 상반=중국 국민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 보호(86.6%)를 강조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는 점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청업체의 파업으로 인한 생산중단을 막기 위해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한국 국민은 41.7%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14.4%에 그쳤다. 한국은 46.9%가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는다면 바람직하다'고 답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기업의 규모가 커져선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업종으로 인식되는 콩나물 사업을 예로 들어 '대기업이 진출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도 한국 국민들은 81.8%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했지만, 중국은 반대로 72.6%가 '바람직하다'고 답해 중국인이 훨씬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세상인이 어려워지는 것이 경제에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중국인들은 한국과 정반대로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78.6%나 됐다.

대형할인점 등 유통업태의 선진화를 통해 소비자 이익이 증진된다는 시장경제적 마인드가 중국 국민들이 한국보다 앞서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자문위원
김용열 산업연구원 기업정책실장.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서근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최종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가나다순)

◆기획취재팀
김영욱 전문기자.최형규 차장.김창규.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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