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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향 미국보다 중국을 더 사랑한 번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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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시드니 샤피로
1915~2014

조국 미국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던 번역가 시드니 샤피로(사진·중국명 沙博理)가 18일 오전 베이징에서 숨졌다고 손녀인 스텔라 궈가 21일 밝혔다. 98세. 유대인인 그는 191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세인트존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중국어 연수자로 선발돼 47년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이후 그는 중국의 전통 문화와 고전 등에 반해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동양 고전과 문학작품 번역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펑쯔(鳳子)라는 여배우와 결혼하고 71년까지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63년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가 그의 중국 고전 연구와 번역에 대한 공을 인정해 중국 국적 부여를 주도했다. 샤피로는 중국 4개 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과 중국 대문호인 바진(巴金), 마오둔(茅盾) 등의 작품 20여 편을 영어로 번역했다. 2010년에는 중국 번역문화 종신업적상을 받았다. 그는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덕(德)의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릴 책임이 있다”며 자신의 중국 국적 취득 이유를 밝혔다.

 정치에도 참여해 1983년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에 선출됐고 이후 국제사회에서 중국 입장을 적극 대변했다. 그는 2006년 미 국무부가 중국 인권 상황을 비판하자 “미국 정보기관이 시민의 전화를 도청하거나 특정인이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리는지를 캐물을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며 오히려 그의 조국을 비판했다. 그는 자서전 에서 “나는 조직 논리나 규율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중국 공산당과 원칙·목적은 존경하고 지지한다”고 썼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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