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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전 때마다 최선 후회 않는 복서 될 터|5차 방어전 앞둔 챔피언 김철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챔피언 김철호(21)는 현관(워커힐아파트13동1102호)에 들어서자마자 갑갑한 듯 넥타이를 풀어 던지면서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챔피언이 된 뒤 네 번째 입어본 양복이라며 점퍼를 걸치는 것이 제일 편안하다고 환하게 웃는다. 그러나 다시 넥타이를 매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챔피언 김은 일순간 난처해한다.
넥타이를 잘 맬 줄 몰라 오늘도 동료 이일복과 장정구가 도와줘 간신히 모양을 냈다는 얘기다. 그는 이날(16일) 청와대로 전두환 대통령께 다녀오느라고 트레이드마크인 구레나룻도 말끔히 밀어 붙였다. 핸섬한 외모는 사각의 정글에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무서운 인상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김철호는 지난 10일 일본의 「이시이」와 4차 방어전을 가진 이래 1주일동안 정신없이 지냈다. 『3회에 다운 당했을 때 충격 받았던 팬이 많았던가봐요. 제 어머님도 그 충격으로 방이 나셔서 어젠 군산에 있는 침술원엘 모시고 다녀왔죠. 또 무엇보다도 후에 신문을 보고 알았는데 제 경기를 TV로 보다가 충격을 받고 돌아가신 분이 계시다죠. 한번 영전에 인사를 드려야할텐데….』
김철호는 이제 온몸에 피로가 엄습해와 며칠 푹 쉬어야겠단다.
『사실 방어전을 눈앞에 두고 홍수환 트레이너와 떨어졌을 땐 정신적 충격이 컸었죠. 그러나 나름대로 충분한 훈련을 해온터여서 타이틀전에 대한 걱정은 안 했습니다.』 그는 약간의 물의를 일으켜 아껴주는 팬들에게 정말 죄송했다고 말한다. 『「이시이」에게 3회에 다운 당했을 땐 충격이 적어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이때까지 점수를 앞서있었기 때문에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각오를 굳게 했죠. 6회에 첫 다운을 뺏었을 때는 저 친구가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데요.
그러나 7. 8회에 연속 다운시킬 땐 마구 부숴 버릴 테니까 또 일어나라는 잔인한 마음도 생겼어요.』 그는 방어전 때마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경기를 벌여야한다는 자세로 임해왔다면서 팬들에게 『김철호는 성실한 챔피언이었다』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싶단다. 그래서 복서들이 공통적으로 갖고있는 경기전날이나 경기직전 래커룸에서의 두려움, 그리고 링에 오른 직후의 불안감 등이 자신에겐 있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에겐 타이틀전을 한 달쯤 앞두고 본격적 훈련에 들어갈 때가 가장 불안할 때다.
이때는 상대방에 대한 작전 등 여러 가지 대비훈련이 엇갈려 며칠간 밤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김철호에겐 많은 팬레터가 오고있는데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편지는 아직 없다.
『복서에게 술·담배는 물론 특히 여자는 마약이다.』 챔피언 김은 전 트레이너 홍수환의 경험론적 충고를 항상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는 나이가 어려 결혼에 대해선 생각도 안해 봤다면서 『김환진 선수가 결혼 때문에 진 것도 아닌데 시기가 나빠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느냐』고 반문한다.
프로스포츠는 돈과의 연관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특히 한번 대전에 엄청난 대전료를 받게되는 프로복싱, 더구나 WBC슈퍼플라이급 5차 방어전에 나서는 챔피언 김철호의 이제까지 대전료에 팬들은 관심이 많다. 『프로복서들은 돈 얘기가 나오면 제일 기분이 안 좋죠. 비록 복싱이 직업이긴 하지만 돈 때문에 때리고 맞는다는 얘기와 연관시키면 괜히 불쾌한 생각이 들어요』라고 전제한 그는 『이번 4차 방어전에서 가장 많은 4천만원의 대전료를 받아 이제까지 모두 1억1천만원정도를 벌었죠. 이중 수천 만원을 전 라이온스 호텔지하의 경양식 집에 투자했는데 잘 안되더군요』라면서 씩 웃는다.
챔피언이 되면서부터 친구를 모두 잃고 자신과 싸우고 있는 김철호는 박찬희 기록의 두배인 10차 방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다음주부터 타이틀 롱런의 고비가 되는 대「오로노」전에 대비한 훈련에 돌입한다.
당초 예정보다 한 달간 연기되어 오는 4월5일 대전에서 갖기로 확정된 이번 5차 방어전은 훈련 날자가 충분해 좋은 경기를 벌일 수 있게 됐다고 벌써부터 투지가 대단하다.
평소 빨간 색 백과 셔츠 등을 애용하면서도 타이틀전이 가까워오면 빨간색을 아주 싫어해 모두 파란색계통의 가운·팬티를 착용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다.
또 경기가 다가오면 구레나룻은 물론 손톱 깎는 것을 금기로 삼아오고 있다. 방어전에 성공할 때마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다는 챔피언 김철호는 앞으로 열심히 정진해서 좋은 복싱을 팬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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