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무시한 부동산 정책 '재손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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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사실상 인정했다. 그동안 내놓은 부동산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투기를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대책이 투기를 잡는 데 큰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더 확실한 투기 대책을 만들겠다는 뜻이지 '투기와의 전쟁'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정문수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17일 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투기심리를 억제하고 부동산 시장을 투명화와 전산화를 통해 안정시킨다는 게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간"이라고 설명한 데서도 이런 기조를 읽을 수 있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정책을 재고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선회로 시장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8월 말 정부의 새 대책이 나오기까지 갖가지 추측과 소문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전면 재검토 배경=정부는 2003년 10.29 대책부터 지난달 5.4 대책에 이르기까지 세무조사는 물론 세제와 행정 규제까지 동원한 갖가지 투기억제책을 쏟아냈다. 강남 집값 오름세에 대해서도 정부는 국지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집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10.29 대책이 나온 직후 잠시 주춤했던 강남 집값은 최근 다시 급등했다. 또 강남을 대체할 것으로 믿었던 판교 신도시 분양이 분당.용인 등 주변 집값을 뛰게 하는 역풍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값이 뛸 때마다 한 건씩 대책을 추가해 가는 방식으로는 투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 실효성이 의문시된 정책은 용도 폐기하고, 강도가 약한 정책은 더 정교하고 강하게 다듬어 종합판으로 다시 내놓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 판교 분양 어떻게 되나=판교 공급주택 수는 1만9000가구→2만9000여 가구→2만6804가구로 계속 바뀌었다. 판교의 중대형 아파트 부족이 집값 급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다시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최근 경기도 분당 신도시와 용인의 아파트값 상승은 판교 신도시의 중대형 평형 공급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한 요인으로 작용한 만큼 중대형 평형 공급이 늘어날 경우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5.7평 이하 택지는 당첨자가 17일 발표돼 공급 절차가 이미 마무리됐다. 따라서 판교 신도시 전체의 골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공급 주택을 10% 이상 늘리는 것은 사전 환경성 검토 협의 등 절차가 까다롭고 환경단체의 반발도 예상돼 10% 이내에서 늘리는 방안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판교 설계가 바뀌면 분양 일정이 미뤄질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개발 및 실시계획 변경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분양이 11월에서 다시 3~4개월 늦어져 청약대기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왕 계획을 바꿀 생각이라면 중대형 평형 물량을 가능한 한 최대로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RE멤버스 고종완 사장은 "판교 대형 평형 공급물량이 어느 정도 늘어나느냐가 관건"이라며 "생색내기에 그칠 경우 시장 안정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급 대책도 추가=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1차적인 재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을 막은 조치가 공급 위축에 대한 우려를 낳아 강남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가수요를 더 자극했다는 평가가 이미 시장에서 내려진 상태다. 강북 뉴타운 개발이나 강남의 저층 아파트 개발에서도 중대형 비중을 높이는 등 변화가 예상된다. 중대형 아파트 공급을 늘리되, 개발이익은 기반시설부담금제 등으로 환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3기 신도시 건설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 부동산 세제 재조정=2008년까지 보유세를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높인다는 계획은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올해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은 이미 과세 기준과 일정이 수차례 발표됐기 때문에 이를 또 바꿀 경우 조세 저항이 거셀 전망이다.

집을 많이 소유할수록 거래세를 무겁게 물리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취득.등록세 등 거래세를 인하하되, 1세대 다주택자에게는 거꾸로 세금을 무겁게 물리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에 도입되는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나, 이를 기반으로 2007년 전면 실시되는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 일정은 예정대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거래가 정보가 시장에 많이 공급될수록 호가 중심으로 부동산값이 부풀려지는 폐단을 막기 쉽기 때문이다.

정경민.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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