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 요란…성과는 미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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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사상가이며 평론가인「레이몽·아롱」교수는 우파와 경제계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국유화정책을 밀고 나가고 있는「미테랑」사회당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글을 불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에 기고했다. 다음은 그 내용-.
「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 정부는 지난 8개월 동안 사회주의 정책을 급속도로 펴왔다. 그런 과정에서「미테랑」은 그의 전임자들 만큼이나 빨리 군주주의 스타일을 닮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알려야할 중대한 뉴스가 없을 때도 기자회견이나 TV인터뷰를 요란하게 벌였다.
그러나 요란하게 소리만 낼뿐 눈앞에 닥친 인플레나 실업문제에 대해선 전혀 새로운 조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직장을 요구하는 사람은 여전히 2백만 명을 넘고 있다. 물가상승 문제도 겨우 현상유지에 그쳤다. 대외 무역액도 눈에 띄게 약화되지는 않았으나 미미한 채로 머물러 있다. 그런가하면 기술자들이 남아도는 대도 1억 프랑이나 들어 기술학원을 설립하는 낭비도 있었다.
「변화」의 추구에서 비롯된 지금의 혼란은 우리로 하여금 최악의 상태를 염려하게 한다. 이런 때 집권층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아무리 많은 비난도 부족할 지경이다.
「모르와」수상이 국유화에 관한「웅변」에만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리고 프랑스전역을 뛰어다니는 대신 수상 실에서 차분히 일한다면 위기의 인상은 좀 걷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국유화·노동의 배분·사회보장비와 예산적자의 증가 등 모든 조치는 프랑스 인들이 의식적이건 아니건 투표로 승인했던 것이다.
국유화대상의 목록은 사회당과 공산당의 합의 아래 짜여졌고 대통령의 환상과 확신덕분에 만난을 무릅쓰고 추진되고 있다. 논리나 합리성으로 다투어본들 아무 소용도 없는 상태다.
「휴식」에 관한 논쟁, 즉 근무시간을 줄인다든지 은퇴연령을 낮춘다는 경제재정장관의 정책은 다행히 겉으로는 성인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상황은 예전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섰던 1936년12월과는 다르다.
내가 유해하다고 주장해온 조치들, 즉 20만 공무원의 증원·은퇴연령인하·근로시간단축 등은 아직은 곤란한 부작용을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고용자 수를 높이면서 일자리 수는 늘려주지 못하는 정책은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지기 마련이다.
사회보장비나 가족수당을 늘리는 문제는 일반적인 수단, 즉 봉급에서의 세금추가징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재원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제개혁도 악성세금을 없애는 대신 다른 세금을 신설할 것이다. 아마도 상속세와 소득세가 상향조정될지도 모른다. 82년 봄 또는 가을이면 이런 증액들의 충격파가 나타날 것이다.
사회주의정당에 의해 44년 간이나 통치되어온 스웨덴은 세제의 운용에 의해 소득의 재분배를 다룬 어떤 나라보다도 더 철저하게 추진했다. 국가지출과 재분배총액의 국민총생산에 대한 비율은 약80%다.
그래도 스웨덴 사회주의자들은 번영의 원동력인 대기업을 국유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미테랑」은 자본주의의 중추인 대기업과 은행의 자유로운 활동을 존중하는 스웨덴의 사회주의를 모델로 삼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미테랑」의 사회주의란 어떤 것인가? 지금 보면 ▲얼마간의 국유화와 ▲세제 및 사회보장제에 의한 어느 만큼의 소득재배분으로 나타나 있다.
이 정도로는 사회민주주의 국가라고 일컬어지는 다른 유럽나라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국유화나 소득재분배에 다소 정도의 차가 있다하더라도 국제경제와 함께 살고있는 나라들은 시장법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예전부터 총체적인 균형을 위해, 고용부족이나 대외지불부족에 대처코자, 또는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여기저기 개입해 왔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사회민주주의에 속한다. 국가경비지출과 사회보장비지출은 국민총생산의 43%에 달하며 이는「지스카르」전 대통령의 7년 임기 중 7%가 증가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당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프랑스는 구주공동체(EC)와 세계시장에 존속하기를 원하므로 총체적인 경제의 계획화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왔다.
사회주의의 논리와 계획에 따르면 당은 자본주의를「개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이러한 결별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자본주의 경제 밖으로의 탈출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저 상징적인 가치밖에 없는 것인가.
지금으로선 두 번째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미 실용성을 잃어버린 화석화한 사회주의이론을 적용한 국유화정책말고는 종래의 자본주의적 정책을 대체할 새로운 무엇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가경제가 연5∼6%이상 성장하는 한 국민생산을 상회하는 사회보장비의 증가는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성장율이 2∼3% 수준에 머문다면 지금의 사회민주주의제도는 지탱키 어렵게 될 위험이 있다.
사회주의는 프랑스에서 1939년 이전에 한 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훌륭하기는 해도 이젠 진부한 사회주의가 과연 프랑스에서 성공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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