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따라 모습 새로운…산아, 금강산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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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월22일 전두환 대통령이「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제시한 뒤를 이어 정부는 지난 1일 그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시범사업으로 서울∼평양간 도로 연결개통, 설악산이북·금강산이남지역을 자유관광 공동지역으로 개방할 것 등 20개 사업을 실천에 옮기자고 북한측에 제의했다. 작가 정비석씨는 이를 계기로 해방 전에 본 금강산의 인상과 금강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기고했다.<편집자주>
산아, 금강산아.
눈을 감고 그 이름을 불러보니, 아득한 기억 속에 거룩한 그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한번 보아 장엄하고도 절묘한 모습에 정이 들었고, 두 번 보아 변화무쌍한 기상에 넋을 잃었고, 세 번째 보았을 때에는 마냥 황홀하기만 했다.
그토록 매혹되었던 금강산이었건만 뜻하지 않은 38장벽으로 영영 못 보게 된지가 어언간 36년-. 옛날부터 그 이름을 봄에는 금강산이라 불렀고, 여름에는 봉래산이라 불렀고, 가을에는 풍악산이라 불렀고,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불러왔다.
그 옛날 진시황은 불로장생약을 구하려고 동남동녀 3천명을 동방의 삼신산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봉래산은 즉 지리산·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였다.「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승려들은 옛날부터 금강산을 열반산(열반산) 또는 기달산(기달산)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열반」이란 즉「불생 불멸의 법성을 증험한 해탈의 경지」를 뜻하는 말이니, 그로 미루어보면 불제자들은 금강산을 진작부터「현세의 극락」으로 믿어왔음이 분명하다. 신라의 천년사직이 망했을 때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망국지한을 홀로 달래다가 그 무덤을 마하연(마하연)언덕 위에 남겨놓은 것도 역시 그런 심정에서가 아니었을까.
흔히들 금강산을「일만이천봉에 팔만구암자」라는 말로 일러온다. 일출봉·월출봉·석가봉·지장봉·망군봉 등등 이름조차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산봉우리들은 마치 군웅이 할거하듯 반공에 우뚝우뚝 솟아올라 제각기의 독특한 개성미들을 자랑하고 있고, 산기슭에는 자작나무·박달나무·물푸레나무·잣나무·전나무 등의 고산수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거져 있는데, 산골에는 흘러가는 물을 따라 천보에 암자가 하나요, 만보에 거찰이 하나씩 도사리고 있어서, 극락정토가 바로 여기라는 느낌이 절실했던 금강산.
그뿐이랴. 깊은 골에서는 언제나 바람소리와 물소리와 새소리와 풍경소리와 염불소리가 한데 어울려 대자연의 교향악을 줄곧 연주해주고 있었으니, 금강산은 만뢰(만뢰)가 조화를 이루는「음악의 대 전당」이기도 했던 것이다.
산이 높고 글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면 물은 절로 풍부해지게 마련인지라, 그 많은 물들이 안개가 되고 구름으로 변하고 비로 둔갑하면서 항상 산허리를 감돌아, 산의 모습을 노상 바꿔가고 있는 요술도 금강산에서만 볼 수 있었던 기억의 하나다.
볼 때마다 새로우면서도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바탕의 아름다움은 추호도 변함이 없었으니,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는 그 동태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본태가 서로 어울려 무궁무진한 조화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금강산이기도 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40여 년 전에 단풍구경을 갔을 때의 벅찬 감격을 아직도 가슴속에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일만이천봉 모두가 요원의 불길처럼 하늘높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어서, 그 속을 걸어가는 나는 충전하는 화염에 휩싸인 듯 육신이 뜨거워옴을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외금강에서 비로봉과 옥녀봉 사이를 거쳐 내금강으로 접어드노라면 그 옛날 선녀들이 하강하여 목욕을 즐겼다는 수많은 여울들이 연주처럼 연달아 흐르는 곳이 있다.
저 멀리 구천에서 억수로 내리퍼붓는 구룡폭포의 물이 이리 굽이치고 저리 굽이치면서 여러 백 개의 여울을 이루어놓은 그곳이 바로 옥류동 계곡인데, 여울물이 어찌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그 골짜기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집에 돌아갈 줄을 모르게 된다.
매월당 김시습은 금강산을 두루 구경하다가 만폭동에 이르러서는 너무도 뛰어난 절경에 오직 아연할 뿐이어서『산에 올라서는 웃기만 했고, 물에 임해서는 울기만 했노라(등산이소 임수이곡)』고만 했으니, 만고의 시인 매월당의 신필도 금강산에서만은 맥을 추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금강산을 4차례나 볼 수 있은 행운을 평생의 자랑거리로 여겨보거니와, 생전에 금강산을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기를 필생의 염원으로 삼아오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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