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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발 교육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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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버드대의 한 경영학도가 학기말 시험을 치르게 됐다. 과목은 수업시간표를 짜며 적당히 끼워넣은 동물학. 조교가 실험실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그 안엔 박제된 새가 큼직한 주머니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늘고 긴 두 개의 다리와 한 쌍의 갈고리 발톱, 그리고 주머니 아래로 살짝 드러난 깃털, 이것이 보이는 전부였다. 조교는 '이게 기말고사'라고 했다.

새의 이동 패턴과 의사소통 방법, 짝짓기 습관 등을 추론하라고 했다. 학생 모두 기겁을 한 것은 불문가지. 마침내 화가 폭발한 한 학생은 '이 따위 시험은 볼 수 없다'며 퇴장했다. 아무튼 시험은 예정대로 4시간 동안 진행됐다."(데이지 웨이드먼 엮음,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

제프리 레이포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학창시절 경험담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인생이나 비즈니스에는 확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새의 발톱만 보고 짝짓기 습관 등 전체를 추론하는 시험이나, 제한된 정보만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부지기수인 인생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이럴 때 그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난관 돌파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강하다. 철저한 상대평가로 수재들 간 살아남기 위한 '하루 4시간 수면 전쟁'이 보통이다. 그러나 하버드를 정말로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매 과목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한다. 교수들은 자신들이 인생에서 체득한 가장 값진 교훈을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내놓는다. 도전과 성공, 실패와 좌절 등. 단순 지식 주입만으론 시대를 이끌 참된 인재를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교사가 입원한 아이들을 찾아가 가르치는 '병원 학교''학습 부진아를 위한 대학생 교사제''무(無)학년제 보충수업' 등 부산발(發) 교육혁명은 한둘이 아니다. 학생을 최우선시해 교실 수업을 뜯어고치고 학교 벽을 허무는 게 골자다. 사실 이 땅을 등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희망 없는 교육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이번 '부산발 교육혁명'을 한국 교육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유상철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