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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은 면피성 회의, 야당은 정부 공격 … 안전 대책 헛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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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환풍구 추락사고 발생 나흘이 지난 20일 여야는 각각 최고위원회의와 비상대책회의에서 수습 대책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 이완구 원내대표. 김을동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비상대책위원, 문희상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김경빈 기자]
서승욱
정치국제 부문 기자

“빨리빨리 회의를…김성태 의원이 서울시 국감이라 시간이 없다.”(이완구 원내대표)

 20일 국회 본청 2층 새누리당 원내대표실. 판교 환풍구 참사 때문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안전행정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 국토교통위 간사인 김성태 의원이 모였다.

 회의는 국정감사를 불과 30여 분 앞두고 시작됐다. 마음이 급한 이 원내대표가 “빨리빨리 하자”며 연신 의원들을 재촉했다.

 열여섯 명이 사망한 참사, 죽음을 부르는 환풍구에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집권 여당의 대응은 이렇게 형식적이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국가안전분과’를 두도록 돼 있는데 구성이 안 돼서 역할을 못한 것 같다”(주 의장)거나 “정부조직법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빨리 통과해 안전에 대한 총체적 컨트롤 타워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조 의원)는 발언 등이 나왔다.

 세월호 참사 뒤 6개월이 지나도록 만들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아쉬움만 주로 표출했다.

 30분 만에 끝난 회의에서 뾰족한 대책이 나올 리 없었다. 22일 경기도 국감 때 판교 현장에서 직접 현황보고를 받을지 말지와 같은 지엽적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는데 그나마 결론을 낸 것도 아니었다. 뉴스는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뿐이었다. 직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원내대표는 “야당과도 정책 제안을 마련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지만 후속조치는 일절 발표되지 않았다.

 야당의 모습도 세월호 참사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전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안전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꾸겠다고 한 발언은 빈말이 되고 말았다”며 “청와대와 총리실, 당·정·청이 세월호 참사 이후 50회 이상의 안전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대한민국의 안전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야 합의를 뒤집으며 세월호특별법 타결을 지연시킨 건 잊어버린 듯 정부·여당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이날 일부 의원은 자기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을 감싸기에 급급했고,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지사와 경기도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

 국감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안전행정위에서 새정치연합 측은 “테크노밸리 조성 때의 최종 책임자가 김문수 전 지사다. 당시의 공사 문제로 지금 환풍구 사고가 터진 것”이라며 김 전 지사를 국정감사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 전 지사 측은 “말도 안 되는 정치공세”라고 반발했다.

 새누리당은 면피에 바쁘고, 새정치연합은 정치공세의 기회만 찾으려는 동안 국정 사령탑인 청와대는 침묵만 지켰다.

 사고가 발생한 17일 밤 이후 나흘 동안 청와대 대변인이 전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나 브리핑에서 판교 환풍구 참사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외국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판교 참사 다음날 일부 일본 언론은 신문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으며 ‘또다시 벌어진 한국의 참사’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 와중에 한국의 정치는 6개월을 허송한 세월호특별법 루트를 똑같이 밟아가고 있었다. 안전 불감증 때문에 한국의 신용도에 얼마나 큰 금이 가는지, 국민이 얼마나 불안해하며 환풍구 위를 걷고 있는지는 개의치 않았다.

글=서승욱 정치국제 부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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