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이성 잃은 "대결"…연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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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학 스포츠라 하면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이 부각된다.
한해의 각종 스포츠 행사 중 가장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빅 이벤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연·고전은 국내 대학스포츠의 체질과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뚜렷한 본보기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연·고전의 발자취는 거의 그대로 대학스포츠의 양상과 흐름을 대변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라는 양교「친선의 노래」가 있다. 연·고전 본래의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또 실제로 그라운드의 열전과 함께 전교생이 동원된 화려하고 멋진 응원전은 젊음이 충만하고 혈기에 넘쳐 보는 이로 하여금 대학의 정열과 낭만을 만끽케 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대잔치가 「폭력의 난무장」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라는 노래는 그저 노래에 불과하다.
승부에 대한 과열의식이 골수에 사무쳐 걸핏하면 폭력의 대결을 벌인다.
「지성의 포효」니 「영원한 우정의 교환」이니 하는 말은 한갓 허식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연·고전이 열린다하면 이젠 『또 어떤 사고가…』하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금방 튀어나올 정도가 됐다.
폭력충돌·집단난투극·경기중단·소줏병난비 등의 사고가 한번도 없었던 연·고대의 대결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작년 10월의 정기전에서도 양교 선수들은 축구장에서 두어 번의, 티격태격이 있었다.
이것이 가장 무난했던 정기전이었다.
양교의 충돌이 특히 빈축을 받는 것은 경기중 선수들만의 옥신각신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고 응원단까지 가세하기 때문이다.
74년9월27일 서울 스포츠센터의 아이스하키 장은 응원석에서 내뱉는 『스틱으로 까라』는 과열응원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이루다 급기야 선수들이 집단난투극으로 돌입,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기는 끝내지 못하고 중단됐다.
이때 구장에서도 주먹다짐을 벌이고 응원석에서 빈병이 날아들었다.
78년9월28일 농구장에서는 양팀 벤치가 먼저 흥분, 졸전과 과열을 선도하더니 경기가 끝난 직후 빈 병이 코트로 날아들어 공포분위기를 이루고 응원단끼리 편싸움이 벌어졌으며 학생과 시민이 중상을 입었다.
79년9월28∼29일의 정기전은 폭력의 종합대결장.
농구장에서 선수들의 주먹싸움과 함께 소줏병 난비로 경기가 30여분간 중단, 혼란이 극에 이르렀고 잠실 체육관은 대형유리 32장이 박살나는 상처투성이였다.
좋은 의미에서 일컫던 「영원한 맞수」가 크게 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운동 팀은 양교의 정기전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양교의 체육관계 실무자들도 이런 경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실무자들은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고 변명한다. 학교당국은 물론이요 재학생과 동문의 요구가 『기필코 타도해야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기전의 대패를 이유로 총장 인책소동을 빚은 일까지 있다.
이 두 명문사학에 대한 스포츠계의 불만은 고교 우수선수를 독점하다시피 함으로써 대학스포츠의 폭넓은 발전을 가로막으며 육상 등 기본종목을 외면하고 소수의 인기 구기종목에 편중, 스포츠의 균형적 육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79년 연세대학보인 「연세춘추」에 기고한 한 학생은 『내실 없는 대학인들의 과장된 연기가 소줏병 문화로 나타났다』고 연·고전을 부끄러워했고 80년 4월에는 일부교수와 학생들이 『지금의 연·고전은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면서 대회철폐를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고전은 획기적인 개선책을 마련하여 사학의 명문답게 긍지와 사명감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박군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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