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파일] '권태"마더'의 충격 영상 여성이여, 욕망을 발산하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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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프랑스 영화 '권태(사진(上))'와 영국 영화 '마더(사진(下))'는 한국 관객에게 낯설다.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비웃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제도.관습의 이름으로 꾹꾹 눌러온 '여성의 원초성'이 튀어나온다.

두 영화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을 부르짖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성들은 자기 반성에 이른다. 소위 여성의 발견. 생명의 뿌리로서의 여성이 도드라진다.

'권태'의 여성은 지모신(地母神)을 닮았다.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랑스 감독 세드릭 칸은 남성의 온갖 불평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독특한 인물인 세실리아(소피 길멩)를 앞세운다. 세실리아는 17세의 누드 모델. 40세의 철학교수 마르탕(샤를 베를링)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소녀를 동경하는 롤리타 신드롬? 풍성한 몸뚱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세실리아는 이혼남 마르탕의 까다로운 성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평소 칸트의 숭고미를 외쳤던 철학자는 그녀의 넉넉한 육체 앞에서 100% 무장해제된다. 게다가 세실리아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 '더러운 돈'이 오가는 원조교제를 상상하지 마시길!

재산도, 미모도, 지식도 별 볼일 없는 세실리아를 '여신'의 지위에 올려놓는 동인은 무조건의 사랑, 무소유의 관계다. 아버지 나이의 마르탕과 몸을 섞으면서도 자기 또래의 가난한 남자 친구와 침대에 들어가는 세실리아. 감독은 '내 것'을 전제로 한 남성의 협소한 사랑을 유쾌하게 비꼰다.

'마더'(감독 로저 미셸)는 모성이란 고정관념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린다. 머리카락 파뿌리 되도록 같이 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더 이상 희망도 욕망도 없는 나이의 60대 후반 할머니 메이(앤 레이드)가 자식 같은 40대 남성 앞에서 옷을 벗는다. 역(逆) 원조교제? 대답은 절대 'No'다. 남편의 요구에, 주변의 눈초리에, 또 중산층 주부로서의 책임감에 그간 눈 감고 살았던 자신의 욕망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상대는 혼자 사는 딸의 남자. 매우 충격적 설정처럼 보이나 "다신 누구도 내 몸을 만질 줄 몰랐어. 장의사를 빼고"라고 말하는 그 앞에서 '희생과 인내'의 어머니는 결국 그 자신을 옭아맨 허상이었음이 밝혀진다.

'권태''마더'는 선언한다. "남성이여 '개폼'을 잡지 마라"고. 그러나 영화 밖 현실은 그런 남성이 지배하고 있으니…. 오, 트래지디! ('권태' 17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 '마더' 24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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