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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고 많아"…격려엔 콧날이 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수은주가 섭씨 영하10도로 곤두박질한 새벽6시. 잠자리에 계속 머무르도록 유혹하는 연탄불 온기를 뿌리치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다.
겨울방학 들어 벌써 3주째. 거리질서를 돕는 교통정리 보조원으로 봉사활동을 겸한 일터를 찾아 나선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상암동 버스종점에서 첫차를 타고 줄곧 졸며 일터로 간다.
일터는 서소문 횡단보도와 버스정류장. 집결지인 서소문 파출소엔 낯익은 아르바이트학생들이 먼저와 자리잡고 있다.
상오7시 노란 깃발을 들고 러시아워 길목을 지킨다. 2시간쯤 탁한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다보면 막일의 피로가 목구멍에서부터 스며든다.
새벽에 어머니가 끊여준 국밥의 따스함도 영하의 추위엔 견디기 어렵다.
서있기조차 힘들 때도 있고 입이 얼어붙어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직업전선의 어려움을 체험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
간혹 지나치는 행인들이『학생, 추운데 수고 많아』하며 던지는 격려에 콧날이 찡할 때도 있다.
성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조리질 운전으로 승객을 괴롭히는 시내버스, 차선을 곡예사처럼 비집고 앞지르기 경쟁하는 택시, 교통질서확립은 멀고 험한 길이라는 느낌이다.
문득 겨울 해외연수를 떠난 친구, 고적탐사로 지방에 내려간 여유 있는 고교동창생들이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일당 6천원. 대학생 연합봉사단에서 2천원, 학교에서 장학금조로 4천원을 준다. 이중에서 하루 1천원을 쓰고 5천원은 꼬박꼬박 챙긴다.
새 학기 등록금이 50만원 선을 넘어 큰 걱정이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인쇄소는 불경기로 일거리가 없고 막내 동생도 올해 대학에 들어가야 하니 우울하다.
1학년 땐 장학금 30만원을 받아 큰 도움이 됐으나 올핸 어떨는지 초조하다.
아침 일을 마치면 곧장 대학 캠퍼스로 가 친구들과 어울린다.
전문 서적과 교양서적도 읽고 토론도 벌인다. 모자라는 어학실력을 보충키 위해 어학실습실도 빠지지 않는다. 점심은 학교 앞 라면 집에서 일금3백원 짜리로 때운다.
저녁 6시가 되면 우리의 하루 봉사활동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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