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단에 활력 전작 장편 잇달아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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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0년대에 들어 소설 작단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전작장편소설이 계속 출간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청전씨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박영한씨의 『노천에서』, 이외수씨의 『들개』, 유익숙씨의 『새남 소리』등이 손꼽히는 작품들이다. 이들 발표 원 작품 외에도 오정희·문순태·김현동씨 등·이 전작장편을 집필해 곧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70년대 중반 몇몇 신인 작가들에 의해 출간됐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전작장편소설 발표의 움직임이 5∼6년의 공백을 거친 후 다시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전작장편의 연이은 출간에 대해 문단에서는 고무적인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우선 작가들이 자신의 작가적 역량을 다한 작품을 전작장편으로써 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또 우리와 소설사가 이제는 장편소설이라는 형태를 꽃피워야 할 단계에 왔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과 출판사에서 지금까지의 『전작장편은 성공하지 못한다』 는 통념을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소설을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작가의 역량이 꼭 전작장편의 형태로 나타날 필요는 없으나 단편이나 중편이 분량의 제약 때문에 한 개인의 삶을 사회와의 연관 속에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써나가기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또 연재소설로 장편을 쓸 경우(신문·잡지·문예지 포함) 연재라는 형식 때문에 작가는 그 연재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한 구성을 하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내놓은 전작장편은 그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알맹이 있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이 같은 전작장편이 지금까지는 많이 나오지 못했다. 그 원인은 우선 작가에게도 있다. 작가적 역량은 따로 두고서라도 하나의 큰 주제를 선정하고 거기에 시간과 정열을 바쳐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투지와 노력·끈기가 있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의 분단상황이라는 여건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은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인공들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렵게 만들고 작가는 단면적·표충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60년대와 70년대 초 우리소설이 김승옥의 『무전기행』,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한석영의『삼포 가는 길』, 최인호의 『타인의 방』, 이문구의 『해벽』등 단편소설로 대표되었고 70년대 중·후반의 대표작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 윤흥길의『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이문구의 『관촌수필』등 중편 혹은 연작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소설은 또 일제시대라는 식민 상황에서 제약받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단편 혹은 중편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80년대의 우리소설이 장편소설이란 형태를 지향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장편을 써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성동씨는 『해방과 6·25를 전 후로 한 시대를 장편으로 밀도 있게 다루어 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 시기야말로 지금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때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김씨의 생각과 같이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파헤쳐 보고 싶은 것은 모든 작가들의 욕심일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의 이러한 욕심은 연작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문정태의 『징 소리』등이 그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연작의 형태는 중편과 장편의 중간형태로 장편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며 많은 연작이 나왔다는 것은 장편의 가능성을 짙게 보여주는 것이다.
전작장편이 많이 쓰여지지 못한 이유중의 또 하나는 발표의 제약 때문이었다. 문설 지나 잡지에서 장편을 1회에 전재하거나 2∼3회 정도라도 분재하여 발표할 수 있게 해주지 못했다.
출판사들이 대체로 전작장편을 바로 내는 것을 일종의 모험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문예지의 빈곤은 전작장편을 쓸 의욕을 꺾었다.
최근에 와서 몇몇 출판사들이 전작장편을 출판해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됐다. 과거 출판사들은 문예지나 신문 등에 연재되어 독자들의 반응을 얻은 작품이라야만 출판할 생각을 했었다.
70년대 잠깐 전작장편이 나온 것은 소설수요가 이상적으로 팽배하여 소설을 내면 무조건 팔린다는 때였고 그 후로도 간간이 장편이 나온 것은 대부분 대중적인 인기를 확신하고 낸 것이었다. 또 일부는 적자를 각오한 출판이기도 했다.
최근의 전작장편 출판은 꼭 집어 무엇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작가 편에서 연재를 하여 원고료를 받고 다시 출판하여 인세를 받는 이익을, 보다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 일부 희생하고 출판사와 바로 계약하여 긴 시간을 두고 작품을 쓸 수 있기를 원하고, 출판사에서도 연재의 광고효과와 성공여부에 대한 어떤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작품을 실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다만 그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현상이다. 우리 소설이 장편의 시대에 언젠가는 한번 다다라야한다면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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