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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형 간염은 '마른 덤불 아래 불씨' … 간암 발생률 확 높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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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형 간염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 황재석 교수가 C형 간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이창우

무관심으로 병을 키우는 질환이 있다. C형 간염이다. 간염 바이러스는 20여 년에 걸쳐 간세포를 서서히 파괴한다. 간은 통증에 둔감하다. 절반 이상 망가져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거의 없다. 이유 없이 속이 메스껍다거나 쉬어도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이 전부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도 안심하긴 이르다. C형 간염은 검진 항목에서 제외된 경우가 많다. 예방백신도 없어 미리 대응하기도 힘들다.

C형 간염은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 B형 간염보다 만성화하기 쉬워 간경변·간암 같은 치명적인 간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국내 간암 환자 10명 중 1~2명은 C형 간염을 앓다가 간암으로 발전한다. 20일은 대한간학회에서 지정한 ‘간의 날’이다. 계명대의대 동산의료원 소화기내과 황재석 교수에게 C형 간염의 위험성과 관리·치료법에 대해 들었다.

-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왜 무서운가.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세상에서 강력한 발암물질 중 하나다.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는 비감염자보다 20배 높은 간암 발생률을 보인다. 예방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혈액을 통해 전염된다. 무심코 돌려쓰기 쉬운 면도기·칫솔·손톱깎이 등을 사용하다가 감염된다. 제대로 소독하지 않은 침·주삿바늘로 치료·문신·피어싱·반영구화장(눈썹·아이라인)도 위험하다. 간염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강하다. 침이나 바늘 등에 묻어 있는 극소량의 혈액만으로도 퍼질 수 있다. 다만 가벼운 키스·악수·재채기·식사 등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아도 C형 간염을 방치할 수 있다던데.

“그렇다. 우연히 혈액검사를 통해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C형 간염은 일부 고가 건강검진을 제외하고는 기본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 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상당수는 자신이 C형 간염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나친다. 나도 모르게 간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2013년 대한간학회에서 일반인 간질환 인지도를 조사했더니 C형 간염 검진율은 10.4%에 불과했다. 실제 검진율은 더 낮을 수 있다. 증상 없이 20~30년이 지난 후 자각증상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간경변·간암으로 나빠진 상태다. 감염 당시 나이가 많아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술을 마시면 간이 더 빨리 딱딱해진다. 그만큼 간질환 진행 속도도 빠르다. 정기적으로 C형 간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정상이면 괜찮지 않나.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다. 흔히 말하는 간수치는 간염증 수치다. 간경변·간암인 상태에서도 간수치는 정상이다. C형 간염에 걸리면 일시적인 염증 반응으로 간수치가 올라간다. 이런 증상은 보통 6개월 안에 그친다. 급성기가 지나고 만성기로 접어들면 염증이 줄어 간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크게 올라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간수치만으로는 간 건강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C형 간염은 중년일수록 위험하다고 하던데.

“C형 간염은 성인이 된 이후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쉽다. 40, 50대 중년이라면 이미 C형 간염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 국내 40세 이상 성인 1.29%는 C형 간염에 걸렸을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마른 덤불 아래 숨겨진 불씨’와 같다. 소리 없이 세력을 넓혀가다가 어느 순간 불길이 치솟으면서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간암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에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출산 과정에서 엄마를 통해 아기에게 수직 감염된다. 다행히 예방 백신이 개발·보급돼 1980년대 10% 수준이던 유병률이 2000년도 들어서면서 1% 이하로 크게 줄었다.”

-C형 간염 치료는 어떻게 하나.

“C형 간염은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다. 빨리 발견해 치료할수록 C형 간염 바이러스 완치율이 높아진다. 치료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간이 딱딱해지는 간 섬유화로 진행되기 전에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한국인은 C형 간염 중에서도 비교적 치료효과가 좋은 유전자 유형을 가지고 있다. 현재 활용되는 C형 간염 치료법은 페그인터페론 성분의 주사요법과 리바비린 성분의 약물을 함께 투약하는 병용요법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4주 혹은 48주 정도 꾸준히 치료받으면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다. 유전자형에 따라 다르지만 완치율이 60~90%에 이른다.”

-최근 C형 간염 치료 신약이 개발되면서 치료를 미루는 경우가 있는데.

“위험한 행동이다. 드물지만 ‘기존 치료법보다 치료 효과가 좋겠지’라는 기대감에 이를 기다린다. C형 간염은 치료 시기가 중요하다. 무작정 기다리다가 오히려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바이러스가 활성화돼 간질환이 진행할 수 있다. 그만큼 간세포는 손상을 입는다. 국내에 시판되더라도 비용 부담이 커 실제로 이를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신약이 이미 출시된 해외에서는 약값이 비싸게 책정됐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기존 치료에 효과를 보이지 않거나 합병증 등으로 치료가 어려운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보험이 적용된다. C형 간염에 걸렸다면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C형 간염 치료를 받고 완치되면 다시 재발하지 않나.

“완치 후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재발할 수 있다. C형 간염은 바이러스를 몸속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간 손상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없애 간경변·간암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는다. 중년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간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간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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