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심이 빚어낸 비극"|무죄 확신했었다는 오희택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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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감사할 뿐입니다. 사필귀정이지요.』
5개월 여 동안 이 사건에 매달려 다른 사건은 거들떠볼 수도 없었다는 변호인 오희택변호사(55)는 무죄선고가 자신에게 내린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 변호사는 지검검사장을 지내는 등 검찰고위간부 출신이지만 변호사 개업 1개월만에 이 사건을 맡아 변호사로서는 초년병이다.
『작년 8월 중순 고 피고인의 친정아버지와 서울대 음대·이화여고 동창회로부터 사건을 의뢰받고 1주일쯤 검토를 해보니 무죄가 확실해 승낙했지요. 엉뚱한 사람이 살인누명을 써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북 영양출신의 오 변호사는 억센 경상도사투리로 힘들었던 변론준비과정을 설명했다. 그동안 매주 한번씩 구치소에서 피고인을 접견했고 틈만 있으면 기록검토와 판례수집 등으로 일관했다는 것.
스스로 우직한 성격이라며 바르다고 생각하면 이해관계 없이 밀고 나가 재조시절「무서운 검사」로 인심을 잃었다고 웃었다.
그는 또 선친이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기독교집안으로 청교도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 출세를 못한 것 같다 면서도『법적 정의는 종교적 양심이다』는 것이 변함 없는 자신의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실체적 진실발견의 의무는 판·검사뿐만 아니라 변호사에게도 있지요. 변호사가 수입만 생각해 무조건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맡은 후 담당검사와의 이견을 보도기관에서「대결」「설전」등으로 표현하는데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이 사건을 맡은 후 평소 무척 친하게 지내던 당시 허형구 검찰총장과는 전화한번 안했고 무더기로 바뀐 검찰간부들과 아직 인사도 안하는 등 몸조심을 했다며 변호사의 직분과 업무한계를 충실히 지켰다고 했다.
『이 사건은 수사기관의 공명심이 빚은 비국입니다. 이젠 우리나라도 철저한 초동수사와 법의학의 개척, 과학수사장비의 확보, 수사인력의 고급화 등을 꾀해「고문」등 일제의 잔재를 벗어날 때가 됐어요.』
수사검사출신의 오 변호사는 수사기관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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