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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시장 위축 속에 ‘싱글몰트’로 활로 모색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있는 ‘더 글렌리벳’ 양조장에서 제조 장인이 오크 통에서 빼낸 위스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페르노리카]

지난달 말 스코틀랜드 위스키 업체 더 글렌리벳이 한국과 중국의 기자들을 초청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초대는 특별했다. 우선은 아시아에서 적극적 마케팅을 해 오지 않은 글렌리벳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글렌리벳은 위스키·보드카·와인·샴페인 등 다양한 주종의 상품을 보유한 프랑스계 대형 주류업체 ‘페르노리카’의 한 브랜드다. 위스키 중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많이 팔리는 발렌타인과 시바스 리갈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 두 주력 브랜드 뒤에 글렌리벳이 가리워져 있었다. 둘째는 초청이 아시아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글렌리벳이 새 시장으로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다.

발렌타인·시바스 리갈과 달리 글렌리벳은 ‘싱글몰트’ 위스키다.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보리가 원료) 위스키를 말한다. ‘블렌디드’ 위스키인 발렌타인·시바스 리갈에 비해 생산·판매량이 적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위스키의 90% 이상이 여러 증류소에서 생산한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밀·호밀 등이 원료) 위스키를 섞어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다.

페르노리카가 한국에서 글렌리벳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데는 위스키 시장의 ‘급변사태’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루던 한국의 위스키 시장은 최근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2010년에는 270만 상자(500mL짜리 9병 기준)가 팔렸으나 지난해에는 185만 상자가 판매됐다. 3년 새에만 32%가 줄었다. 주류업계에서는 경기 위축, 음주문화의 변화, 와인·막걸리 등 다른 주종의 판매 성장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그런 가운데 유독 싱글몰트 위스키는 판매가 늘어났다. 대표적 브랜드인 글렌피딕의 경우 올해 9월까지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5% 늘었다. 최고급 싱글몰트인 발베니는 같은 기간에 25.3%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글렌리벳도 40%에 가까운 매출 신장이 있었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위축과 싱글몰트 위스키의 급성장으로 페르노리카처럼 양쪽 브랜드를 다 가진 업체는 마케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위축된 판매실적을 만회하는데 싱글몰트가 효자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노리카의 권오석 홍보대사는 “아직도 주력은 블렌디드 위스키이지만 글렌리벳과 같은 싱글몰트 시장의 잠재력이 커 전체적인 판매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글렌리벳은 전 세계 시장에서는 글렌피딕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미국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글렌피딕과 맥캘란에 많이 뒤진 3위다.

국내에서의 싱글몰트 위스키 판매 성장에는 달라진 음주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스키 바이블』이라는 책을 쓴 유성운 한국위스키협회 사무국장은 “접대·회식자리에서 폭음하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즐기는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위스키 중에서는 더 맛과 향이 풍부한 싱글몰트를 즐기는 이들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싱글몰트가 인기를 끌면서 싱글몰트 내에서도 고급화·특성화가 진행 중이다. 국내 면세점에서 ‘12년’ 품목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글렌피딕의 자매 브랜드인 발베니는 ‘싱글 캐스크’ 위스키까지 판매 중이다. 싱글 캐스크는 하나의 오크통에서만 빼낸 위스키를 그대로 병에 담은 것을 말한다.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싱글몰트를 넘어서서 하나의 오크통에 담긴 원액만 사용하는 고급 술이다.

싱글몰트 붐 속에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갖추고 있는 ‘몰트 바’가 속속 생겨나는 가운데 호리병처럼 생긴 위스키 전용잔을 쓰는 이도 늘었다. 유 사무국장은 “‘원샷’ 문화가 줄어들고 좋은 술을 적당량 마시는 문화가 퍼져 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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