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한· 국민당의 신년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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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한·국민등 비집권당의 총재는 최근 각각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경제·사회 등 제반문제에 대한 자당의 포부를 밝혔다.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이어 자당의 새해 설계를 펼치는 형식으로 가진 이 회견에서 두 당의 총재는 선거법·국회법·언론기본법 등 정치관계법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여야당의 균형 있는 발전이 민주정치의 기본원리며 전제라는 점에 견해를 같이했다.
유치송 민한당 총재는 이밖에 대학입시는 대학의 자율에 맡길 것과 지방자치제의 조속한 실시를 촉구했으며, 국민당의 김종철 총재는 쌀값 하락방지와 농민들의 영농의욕 고취를 위해 우선 3백50만섬에 달하는 금년도 외미도입 계획을 전면 취소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는 현재 민한·국민 등 비집권당이 처해있는 어려운 여건을 충분치는 못하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궁색한 정치자금을 비롯해서 선의의 경쟁관계에 있는 여야당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는데 대한 허탈감이랄까 좌절 같은 것도 짐작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정당이 한해의 포부와 경륜을 밝히는 연두회견의 목소리치고는 주장의 강도나 박력에서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민한·국민당의 총재가 말한 내용은 이미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원론적인 얘기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자당의 주장을 내세우는 목소리치고는 약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정치문제에 관한한 이들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국회법·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의 개정문제에 대한 야당의 공세에 대해 얼마만큼 강력하게 집권당에서 대응하고 있는지는 작년의 경우 충분히 증명되었다. 기왕 개혁의지를 통해서 만든 법인이상 한 두 해의 시험기간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민정당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정치관계법의 개정문제는 따라서 야당으로서의 한계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점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문제는 비단 정치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문제 보다 훨씬 절실한 것은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경제문제이며 가령 입시제도의 모순점이라든지, 따지고 넘어가야 할 쟁점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의 기능은 궁극적인 목표를 집권에 두어야하므로 정당의 차원에서 볼 때 정치적 이슈처럼 중요한 것은 없겠지만 국민들의 가려운 점, 불편한 점을 가려내 이를 시정하는 노력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야당이 자금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제1야당의 당수가 기회 있을 때마다 그 고통을 호소한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경이다.
우리의 헌정사를 통해 언제 야당이 넉넉하게 자금을 써가면서 당 운영을 한 적이 있었던가를 자문해 보면 이에 대한 회답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고언을 하는 것은 민한·국민 등 야당들이 나름대로의 위상을 빨리 정립, 이 나라 정당정치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충정에서임을 밝히고 싶다.
우리 나라의 야당이 자신들의 내부를 정비, 현대적 정당으로 발돋움할 것을 기대하면서 한편 민정당이나 정부도 집권당의 지나친 우위현상이나 정당간의 격차가 정당정치의 긍정적 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는 야당의 지적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이 나라 정치발전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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