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중개소들 동맹휴업 속내 들여다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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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이례적인 동맹휴업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송파구에서 시작된 휴업에 13일부터 강남구와 경기도 분당.용인이 가세했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마저 나서면서 동맹휴업은 조직적으로, 전국적으로 벌어질 분위기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전국적 동맹휴업은 2000년 7월 정부의 부동산 중개수수료 개정에 반발해 벌어졌었다. 당시에는 수수료 현실화를 요구한 '생존권 쟁취'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 "집값 폭등, 우리 탓이냐" 불만=중개업자들은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며 "중개업소들이 집값을 부추기는 듯한 정부와 여론의 그릇된 인식을 이번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정부가 중개업자들을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고 있다며 불만이다. 지난해부터 추진된 부동산중개업법 개정을 그 예로 든다. 개정안은 집값 상승을 잡기 위해 실거래가격 신고 의무를 중개업자들에게 부과하고 있다. 송파구 H공인 김모 사장은 "거래 당사자들이 정하는 가격을 중개업자는 서류에 작성하는 것뿐"이라며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매도인이 높게 부르는 가격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는 "정부가 최근의 집값 폭등 원인을 중개업자에게 돌리고 있다"며 15일부터 동맹휴업을 한다고 밝혔다. 경기도 분당 신도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가 13일 임시휴업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임현동 기자

정부가 집값 안정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중개업소 단속도 문제라고 본다. 중개업자들은 주민들의 가격 인상 으름장이 가격 상승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아파트 부녀회 등에서 중개업소를 방문해 매물 가격의 상향 조정을 요구하고 반상회 등을 통해 하한선을 정한다는 것이다. 강남 지역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주민들이 주변에서 가장 비싼 가격의 수준에 맞춰 팔아달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왕따'시켜 중개를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녀회 등의 '집값 담합'은 2003년에도 문제가 됐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여부를 검토한 결과 "사업자가 아니어서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이들은 일부 중개업소의 가격 부추김을 부인하지 않는다. 용인지역 K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귀하다 보니 중개업소에서 '비싸게 팔아주겠다'며 매물을 확보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 장사 안 돼 '이참에 쉬자'=동맹휴업 속사정엔 가격 급등 뒤에 가려진 중개업계의 어려움도 작용한다. 거래를 수반하지 않는 가격 상승으로 실제 거래는 적어서다. 올 들어 대표적인 집값 상승 지역의 하나인 분당의 경우 장사가 안 돼 팔려고 내놓은 중개업소 매물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분당지역 한 공인중개사는 "주변 중개업소들 절반 가까이가 매물로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1억원이던 권리금이 최근엔 2000만원 정도로 급락했다"고 말했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공인중개사를 지나치게 많이 배출해 중개업소들이 급증하면서 과당경쟁으로 운영난이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5년 자격제 실시 이후 지난해까지 합격한 17만6888명의 공인중개사 중 32.6%가 창업했다. 전국에 등록된 중개업소(3월 말 기준 7만2325곳)는 2001년 말보다 46% 늘었고 전체 중개업소의 80%가량은 공인중개사가 운영한다. 송파지역 E부동산 관계자는 "거래는 안 되고 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싶어 휴업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 '밥그릇 챙기기'의도도=이번 중개업법 개정 때 현재 변호사 등에 국한된 경매.공매 입찰 신청대리도 가능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들어 있으나 변호사 등의 반발로 논란을 겪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맹휴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시장이 마비될 경우 매매.전세 실수요자의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강남권과 분당.용인 등을 제외하고 집값이 대체로 안정돼 있는 지역들에서 얼마나 동맹휴업에 참여할지도 불투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개업계의 자정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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