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나약함이 공산주의를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74년 소련에서 추방된 반체제작가인「알렉산드르·솔제니친」(63)이 「폴란드사태가 주는 교훈」이란 재목으로 불 시사주간지 랙스프레스에 기고한 글이다.
오늘날의 폴란드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소련공산혁명 후 지금까지 65년간 이번과 같은 유형의 사태는 40회의 이상 벌어졌지만 서구인들은 그 교훈을 모르는 척 하거나 또는 거꾸로 해석하려 해왔다.
영국의 어떤 신문은 지난해말『서구의 올 크리스마스는 잡쳐버렸다. 라틴아메리카 유명의 군사정부가 공산당을 내쫓기 위해 폴란드에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식의 환상적 인식과 철없는 분노에 있다.
집권 공산당을 축출하려한다니-. 언제 어디서 누가 예전에 그 같은 일에 성공했단 말인가. 크렘린이 강요했다고? 하지만「야루젤스키」·폴란드 민병대·폴란드 군대 모두가 왜 이애 따라야 했단 말인가.
지금까지 있었던 40가지의 교훈 중 폴란드의 교훈은 특히 더 분명하다. 왜냐하면 폴란드는 국가적 동질성·단일성·통합성·종교적 감정 등으로 굳게다져져 그 무엇도 국민을 분리시킬 수 없는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가 필요한 만큼의 공산주의 집행자를 키워왔단 말인가. 오늘날 분개하고 있는 폴란드 국민 중 어떤 사람은 1945년의 비공산계열 국민군대 말살운동에 참여했었다. 마찬가지로 1968년 체코 사태 때 프라하의 희생자들 중에는 1945년 공산주의 창설에 열광하고 소련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비웃은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즉 20세기의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은 그러한 나라, 그러한 국민, 그러한 지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만인의 악에서 온다는 것이다.
무서운 사실은『크렘린의 강압』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정신적으로 허약해 공산주의가 파놓은 구덩이에 우리 스스로 파묻힌다는 점이다.
오늘 폴란드에 때늦은 동정을 표시해 그들이 다시 한번 공산주의의 굴레를 벗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다.
그럴 것이면 왜 서방연합국들은1946년 폴란드를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와 함께 그렇게도 태평스럽게 공산주의의 입 속으로 넣어 주었는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도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트로흐키」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50여년 전 이미『베를린에의 접근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라고 분명히 썼고,「레닌」도1915년 스위스에서 쓴 강령에 공산혁명군의 인도진입을 예언하지 않았던가.
폴란드의 교훈은 폴란드자신이 자유에 대한 검열과 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음에도 패배를 맞고 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것이다.
서구의 어떤 나라도 그러한 저항의 역량을 축적하지 않았다. 폴란드의 12월 사태는1917년부터 1982년까지 바로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의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한 서구의 장례 행진곡이다.
요즘 사람들은『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죽었다. 이 이데올로기는 실패로 끝났다』는 환상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아직 전세계률 정복하기 위해 활활 타고 있는데 말이다.
「브레즈네프」(소련공산당 제1서기장)와「야루젤스키」만이 폴란드사태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등소평(중공),「폴·포트」(캄보디아),「카스트로」(쿠바) ,「마르셰」(프랑스공산당당수), 니카라과의 지도자…모두 책임을 나눠 갖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그 본질과는 상반되는 형이상학적인 힘이다. 즉 물리적·경제적·사회학적 법칙과는 상관없이 작용하는 것이다.
어떤 논리로 봐도 마땅히 쓰러져야하는데 실제론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방의 나약성 때문이다.
유럽은 자신의 군대를 믿으려 하지 않고 모든 희망을 외부의 기적 즉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의 성공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적은 비뚤어진 영혼에는 찾아들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결코 결실을 본적이 없으며 서방측은 항상 실패할 뿐이다.
얄타·헬싱키, 지금의 제네바 군축회담, 이 모든 협상에서 서방은 줄곧 속아만 왔고 공산주의의 성공만 보장해 주었다.
서방의 민주주의는 환상에만 집착하고 있다. 냉정한 적과의 협상이 유익하다고 믿는 것은 분별없는 깃이다.
3세기에 걸친 역사적 결과인 서방의 나약함은 근본체질로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날 서방사회는 소비성향이 점점 더 높아지고, 일하기를 꺼리며, 쾌락주의로 흐르고, 가정이 파탄되며, 마약이나 무신론의 유혹에 젖고 ,테러리즘으로 마비돼 강력한 에너지가 소진되고 정신적 건강을 잃었다.
물론 억압받는 사람들은 아직도 여기저기서 봉기하려 하며 피로써 댓가를 치르더라도 성공을 쟁취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가만 앉아서 그것만 바란다면 서방은 끝내 멸망할 것이다.
이지구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적인 질서가 필수적이다. 즉 자신의 정신을 공고히 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앙양시키는 길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