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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유기풍 서강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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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나태주(1945~) ‘행복’

아내의 빈자리가 던져준 교훈
홀로 자족하니, 그것이 행복

내 나이 환갑 넘도록 부실한 나와 지난 35년 이상 별 탈 없이 잘 살아준 집사람이, 몇 주 전에 외국에 거주하는 큰아들의 둘째 아이 돌잔치를 해준다고 홀연히 혼자 여행을 가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끔 기러기 애비 신세가 되면, 혼자 부엌에 들어가 적당히 밥 한 끼 만들어 그럭저럭 해결하곤 했는데, 이젠 점점 꾀가 나고 밥해 먹기가 싫어진다. 이게 잘못 늙어가는 징후인가?

 연휴에 홀로 집을 지키면서 TV도 보고, 인터넷도 보고, 이것저것 다해도 별 재미가 없어 멍하니 있는데, 불현듯 언젠가 명시로 만났던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가 생각났다. 짤막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시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것들의 행복감을 적당히 편안하게 써내려 간 듯한 짧은 시, 그러나 그 울림이 크고 깊다. 지금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 그 시인이 묻는 것 같다.

 그래, 얼마 지나면 손주 돌잔치 해주고 돌아올 집사람이 있다는 것, 혼자라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혼자 흥얼대는 노래 몇 개 있다는 것, 이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유기풍 서강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