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 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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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3일 보잉737 여객기가 추락한 미국 포토믹강에서 구명로프를 양보한 한 「영웅적인 곤사」의 이야기는 사뭇 김동적이다.
이 신사는 자신에게 먼저 던져진 구명로프를 부인들에게 양보하고 마지막 차례를 기다리다가 끝내 얼어붙은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 여객기에는 승객74명과 승무원 5명이 타고 있었으나 명부에 기재안된 어린이도 많았다.
강은 요즘 미국 동북부를 엄습한 이상한파로 꽁꽁 얼어 있었다.
헬리콥터도 구조에 나섰는데 조종사 두 사람이 고귀한 희생을 목격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간신히 기체를 탈출한 6명이 비행기 꼬리를 잡고 있었다.
화재의 「신사」는 몇차례나 구명대를 양보했으며 헬리콥터가 5명을 구하고 마지막 이 신사를 구하러 갔을 때는 이미 조용히 강속으로 가라앉은 뒤였다. 아직은 그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나이. 조종사는 말한다. 『내생애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비행기가 물위에 떠있던 불과 20분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외신들은 그에게「영웅적인 신사」라는 호칭을 서슴없이 부여했다.
언젠가 프랑스의 한 장군은 스크틀랜드연대를 방문해 『신사의 품위는 위급하고 위험할때에 그 면모가 발휘된다』고 연설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1852년에 일어난 버큰헤드호의 조난비화다. 4백72명의 영국군과 1백62명의 부녀자를 태운 버큰헤드호는 한방중에 암초에 부딪쳐 배에 구멍이 났다. 선장은 보트를 내려 부녀자를 모두 옮겨 태웠다. 그리고 선원들에게 바다로 뛰어내려 보트로 헤염쳐 가라고 명령했다.
이때 한 대위가 소리질렀다. 『그렇게 하면 부녀자들을 태운 보트가 가라앉고 맙니다』는 것이었다. 모든 병사들은 그 장교의 말을 좇아 침몰하는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철동도 않은채 조포까지 쏘면서.
「S·스마일즈」는 『자조론』에서『이때의 모범은 결코 잊혀지지않을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무릅쓰는 희생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나 동양이 충절을 위해 죽는 반면 서양에선 공공의 규범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
한때 『영국사회의 특성은 천재들의 도움을 요청하나 인격자들의 지도를 따르는데 있다』 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자율시대를 맞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공공의 질서와 명분을 위한 희생의 정신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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