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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제 금융허브로 성장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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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정부는 한국을 이른 시일 내에 국제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금융 인프라 구축, 선도 금융시장과 업종의 육성, 그리고 국제적 유대 강화를 위한 정책 등 세 가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금융 허브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금융 인프라 개선을 위해 강조된 내용에는 외환규제의 완화, 금융규제의 근본적인 개선, 금융감독 체계의 혁신 등이 포함됐다. 또한 우리나라가 금융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선도시장과 업종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정부는 우리가 비교우위가 있다고 판단되는 채권시장.구조조정시장.파생상품시장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했고, 업종으로는 자산운영업.사모투자펀드.투자은행업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서는 통합 증권거래소의 국제화와 국제자문단 구성 등을 생각하고 있다. 이 외에 이번 계획은 추진체계도 부총리를 중심으로 크게 강화했다.

한마디로 이번 계획은 2003년 발표한 정부의 금융 허브 로드맵을 여러 면에서 개선.보완한 것이다. 첫째, 2003년 로드맵은 시간적으로 매우 느슨한 계획이어서 2012년까지 자산운영업에만 특화하고 2020년까지 몇 가지 분야를 더 추가하는 것이었는데 비해, 이번 계획은 한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라면 구태여 2012년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고 곧바로 육성에 나서겠다는 정책의지가 역력하다. 시간계획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몇 개 선도산업의 조기 육성을 강조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전체 시간계획도 사실상 앞당겨진 것이다.

둘째, 한 나라가 금융 허브가 되려면 외환거래의 자유화가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2003년 로드맵에는 그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그러나 이번 계획은 2009~2011년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 외환자유화를 훨씬 앞당기겠다는 정책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조기에 실시해도 큰 지장이 없는 분야에는 외환자유화를 올해 하반기부터라도 착수하겠다고 한다.

셋째, 2003년 로드맵에서는 금융 허브를 추진하는 책임과 행정체계가 모호했는데, 이번에는 이 같은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됐다. 즉 금융 허브 추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거의 모두 경제부총리와 재경부로 집중됐다. 이뿐 아니라 재경부 내에 현재까지는 미미하던 금융 허브 태스크포스도 크게 확장될 전망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금융 허브 건설을 위한 정책의지를 국제사회에 강력히 전달하고 그들의 협조를 얻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전문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국제자문단도 만들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계획에서 이러한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우선 정부의 뜻대로 금융감독과 규제체계를 원점에서 개선하려면 법률서비스 시장의 개방이 필수적이다. 원래 금융분야의 경쟁력이 강한 나라들은 대체로 영미법에 기반을 둔 네거티브 리스트 규제체제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륙법에 기초한 포지티브 리스트 규제체제를 갖고 있다. 이런 우리나라의 규제체제를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하려면 특히 영미법에 정통한 외국 율사의 서비스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법률서비스시장의 조기 개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융산업은 그 어느 산업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강력한 금융노조로 말미암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끝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수준급의 금융 허브가 되려면 이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혜택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높아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

아무쪼록 정부는 이런 몇 가지 미진한 점을 조속히 보완, 우리나라를 이른 시일 내에 세계 수준급의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켜 주기 바란다.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