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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총리 '간디·네루 따라하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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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도의 정치명문가 네루·간디 가문을 ‘왕조’라며 비판하며 집권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사진) 총리가 거꾸로 네루·간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네루·간디 가문의 적자인 라훌 간디가 이끄는 인도국민당(INC)에 역대 최악의 패배를 안기며 지난 5월 취임한지 넉 달만의 방향 전환이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와 그의 후계자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는 야당인 INC의 상징 같은 존재다. 네루·간디 가문은 네루 총리의 딸 인디라가 하원의원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며 ‘간디’라는 성을 추가했으며, 마하트마 간디와 직접적 연관은 없으나 정치적으로 네루와 간디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인도 현지 언론 퍼스트포스트는 “모디 총리가 INC의 유산을 찬탈했다”는 표현까지 썼다.

 모디 총리의 네루·간디 활용 전략은 그가 최근 야심 차게 시작한 ‘깨끗한 인도 만들기’ 캠페인에서 두드러진다. 2일 캠페인 출범식에서 그는 왼쪽엔 간디 사진을, 오른쪽엔 자신의 사진을 넣은 거대 포스터를 걸었다. 간디의 동그란 안경테를 캠페인 상징으로 등장시키며 “깨끗한 인도 만들기는 간디와 네루의 꿈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주엔 “네루의 탄생일인 11월 14일에 특히 캠페인을 강조하라”는 지시도 했다.

 강경한 힌두교 근본주의자로 인도 사상 “가장 분열적 총리”라는 별명이 붙은 모디 총리가 정치적 보폭을 넓히는 모양새다. 모디 총리는 네루에 대해 공개 비판을 서슴지 않아왔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네루의 저서 『인도의 발견』을 언급하며 “나는 인도를 ‘발견’할 필요가 없었다”며 유학파인 네루와 홍차 노점상인 자신을 차별화했었다. 네루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사다르 파텔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모디는 취임 다음날이 네루 서거 50주년이었지만 기념식에도 불참했다. 그런 그가 지난 주 네루를 ‘차차(Chacha·‘삼촌’이라는 뜻)’라고 부르며 “어린이들은 네루를 기억해야 한다”고까지 언급한 것이다.

 모디와 간디·네루의 공통점은 희박하다. 인도 무슬림에 대한 입장에선 확연한 차이가 난다. 마하트마 간디와 네루는 무슬림 및 소수 종교에 대한 포용 정책으로 “무슬림이 신뢰하는 힌두인은 네루와 간디뿐”이란 말도 나왔다. 그러나 모디 총리는 “힌두에 의한 나라를 꿈꾼다”(뉴욕타임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힌두교 금식기간인 ‘나브라트리’라는 점을 들어 백악관 만찬에서 따뜻한 물만 마시며 생선 요리를 즐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무안하게 했다. 구자라트주 총리 시절인 2002년에 발생한 종교 충돌 사건 당시 1000명 이상의 이슬람교도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미국·영국이 비자 발급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정책 성향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자본주의를 거부한 마하트마 간디와는 달리 모디 총리는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고 친기업 성향을 드러내며 강한 인도 건설을 위한 우파적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디의 변신이 “다인종·다언어국가인 인도를 통치하기 위한 포석”(타임스 오브 인디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네루·간디의 활용이 ‘깨끗한 인도 만들기’ 캠페인처럼 비정치적 이슈에만 국한된다는 점에서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간디의 후손들 역시 환영 아닌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증손자인 라지모한 간디는 “할아버지를 이용하건 악용하건 그건 자유”라며 “(모디의 진실성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 비판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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