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식의 그물을 던져 건진 언어들|송춘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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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집에 도착했다. 엄마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나를 보자 엄마가 우셨다. 또 시작이구나. 나는 역겨웠다. 엄마는 술이 취하신 것 같았다. 한 달만에 집에 들어와 나는 또 다시 집을 나가야겠다고 순간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우시는 이유는 나의 판단과 정반대였다. 내가 엄마를 괴롭혔다고 우시는 게 아니었다. 내가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렸다고 우시는 거였다. 무식한 엄마도 그게 기쁜 일이라고 판단되었던 모양이었다. 아아, 나의 이마에도 다시 한번 붉은 표지가 전혀 타인의 의사에 의하여 붙여지고 말았던 거였다.
나는 아직 소설이란 게 뭔지 잘 모른다. 쓰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던 영혼의 갈증. 내가 나를 고발하지 않고는 부끄러웠던 날들, 신이나를 저주하기 전에 내가 나를 저주해야만 했던 완고한 고집, 그런 것들이 내 기억의 핏줄을 타고 오늘 또 다시 나를 울린다.
누군가가 썼던『회색노트』를 나도 써 보려고 했었다. 내가 경험한 세계와 사물들을 조목조목 그 노트에다 기록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노트를 내팽개쳤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납게 언어와 투쟁하는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의 사춘기를 온통 덮어 버렸던 무력감 또는 삶에 대한 절망감이 더 큰 이유일거였다.
이제『회색노트』를 다시 써야겠다. 무엇이고 쓴다는 것은 구원이었다. 그리고 절망의 확인이었다.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을 뽑아 주신 분들께 나는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나…. 산다는 것도 눈물겹고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눈물겨운 이 참혹한 시대에 나는 무엇을 또 쓸 수 있을까.
나는 소설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쓸 생각이다. 내가 참으로 쓰고 싶은 것-그것이 소설적이 아니어도 나는 상관 않겠다. 다만 내 의식의 그물로 건져 올린 언어를 나름대로의 구조에 담아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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