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금은 물려도 내쫓지는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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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는 조세피난처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펀드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투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물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취득했다가 나중에 주식을 팔아 차익을 얻었거나, 자산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으로 이뤄진 회사에 투자해 벌어들인 이득도 국내에서 과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외국 자본이 국내에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거액을 챙겨도 우리 과세 당국이 속수무책이었던 사례가 많았다. 국내 세법에 이와 관련된 조항이 없거나 모호해 세금을 물리지 못했거나,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과세권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 마련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것은 이런 조치가 자칫 외국 자본에 대한 의도적인 배척과 차별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자본들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끌어들인 경우가 많았다. 당시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 매물로 쏟아져 나온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의 상당수는 이들 외국계 자본이 아니었으면 청산되었거나 정부가 계속 떠안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돌이켜 보면 헐값에 넘겼느니, 국내 자본에 파는 게 나았을 거라느니 하는 불만이 나오지만 당시는 외자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뒤에도 일부 외국계 펀드의 편법적인 투자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법과 규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떼돈을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외국 자본을 배척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래서는 외환위기를 통해 힘겹게 얻은 구조조정의 경험과 국제화의 결실을 우리 스스로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외자 정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외국 자본에 대한 과세권을 실질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세련된 정부의 대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