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 겪은 전초에 비키니 미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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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동은 원유공급원으로서, 또 한국의 경제진출 대상지로서 한국경제와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사다트」이집트 전대통령의 암살후 중동의 평화기축이 흔들리면서 미·서구 및 소련의 이해가 이 지역에서 심한 충돌현상을 빚고 있다. 세계의 분쟁지역으로서 제l위로 꼽히는 중동이 80년대에는 어떤 돌풍을 몰고 올 것인가, 또 그런 변화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받게 될 한국은 중동사태를 어떤 입장에서 보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중앙일보는 그런 의문의 열쇠를 찾기 위해 장두성 런던특파원을 보내 현지사정을 전하는 연재물로 기획했다.
시나이반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샤름엘셰이크는 중동전때마다 떨치던 전략요충으로서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로 들꿇고 있었다.
8년전 세계를 석유위기로 몰아넣었던 처절한 전쟁터는 이제 한가로운 국제휴양지로 변모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가차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밤이면 철수를 준비하는 이스라엘군의 콘크리트·벙커 파괴 작업인 듯 폭음이 조용한 공기를 이따금씩 뒤흔들어 놓고 있다. 홍해를 내려다보는 언덕의 해안초소 자리에는 국제평화유지군이 들어설 막사를 짓기 위한 정지작업이 미국회사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6년 동안을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가바이」라는 이스라엘 사람은 『이 절경을 이집트에 넘겨주다니-』라며 몹시 애석해 했지만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년 4월이면 이스라엘은 철수하도록 되어 있다. 한때 6백여명이 살던 이 마을에는 이제 2백명 정도만 남아 있다.
그동안 건설해 놓은 휴양시설들을 북구의 투자가들에 팔아서 이집트인들이 오더라도 계속 영업을 하려는 뒷거래가 진행중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는 있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샤름엘셰이크가 다시 전략요충으로 세계의 매스컴을 타게 될 것인지 아니면 국제휴양지라는 평화의 상징으로 정착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시나이반도의 반환이 중동분쟁의 중대한 고비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마을에서 2km만 나가면 사막 여기저기에 녹슨 모습으로 뒹굴고 있는 전차·야포·전투기의 잔해들이 이지러진 철편들과 함께 4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동문제의 상처를 일깨워준다.
시나이반도는 6만1천평방km의 면적을 가진 불모의 사막지대이다. 베두인 유목민들이 유랑하는 외에 이 지역은 사람살만한 곳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이스라엘간 협상에 이 땅이 큰 역할을 하게된 이유는 이땅이 갖는 전략적 역할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67년 전쟁에서 이 땅을 점령함으로써 73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 본령을 건드리지 않고 이 불모지에서 싸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에즈운하라는 첫 장애물이 있고 전장 2백10km나 되는 사막이 두 번째 장벽이 되어주기 때문에 기습을 당하더라도 군 동원의 시간 여유가 있다』고 이스라엘군의「하신」중령은 설명했다. 이걸 이스라엘 전략가들은 「전략적 깊이」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이 국방에 필수적인 이「전략적 깊이」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73년 전쟁에서 처음으로 아랍연합군의 선제공격을 받아 곤경을 겪은 후 전략가들은 『주변 아랍국가들과의 우호관계 없이는 전략적 깊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소위 캠프데이비드 협정이라는 이집트와의 평화협상이었다.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이를 주도한 「사다튼」대통령의 암살로 위협을 받게 될지 모른다든가,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시나이의 남은 30%의 땅을 반환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일부 관측이 있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에 와서 각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시나이는 분명 돌려주리라는 인상이었다.
두 적대국 중에서 군사적으로 더 강대한 이집트와 단독강화조약을 체결한 이상 시리아 단독으로 도전해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이스라엘 전략가들은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계산은 시나이는 되돌려 줘 적진을 양분시킨 후 67년 전쟁에서 점령한 나머지 땅, 즉 요르단강 서안과 골란고원은 그대로 장악하는 선에서 중동문제를 질질 끌어보자는 속셈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중동분쟁의 핵심이 이집트-이스라엘 관계에 있지 않고 멀쩡한 민족을 실향민으로 만들어 버린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그들의 나라를 허용해 줘야 한다는 숙제에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나라를 세워줄 수 있는 후보지는 원래가 그들의 땅이었으나 67년 전쟁에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요르단강 서안일대와 가자지구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나이반도의 반환작업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중동문제 해결에 큰 진전으로 보기 힘들다.
그래서 시나이반도의 반환을 중동평화의 요인으로 과대 평가하는 것은 아직 시기가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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