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뉴스] 우즈벡 사자우리 빠져나오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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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길고 긴 하루가 저물었네요. 여러분도 진이 다 빠지셨겠죠.

양 감독 인터뷰까지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지금 저는 온 몸이 땀 범벅입니다. 그나마 박주영의 동점골로 기사회생 했으니 망정이지….

오늘 타슈켄트 낮 기온이 42도였답니다. 공식 기온이 35도를 넘으면 관공서가 쉬도록 돼 있어 기상 당국은 34도라고 발표를 했죠. 직사광선이 내려쬐는 ‘사자 우리 기자석’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습니다. 게다가 게임까지 잘 안 풀렸으니.

경기 얘기부터 해 보죠. 역시 대표팀의 원정 징크스가 드러났습니다. 어제까지는 선수들 컨디션이 참 좋았거든요. 경기 당일에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세심한 선수단 운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차두리ㆍ이영표 등 해외파 선수들의 움직임이 둔했습니다. 박지성은 전반 중반까지 헤매다가 이후 살아났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차두리와 유상철을 좀 더 일찍 교체해 줬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후반 중반 안정환을 빼고 이동국을 투입, 박주영과 투톱으로 간 이후 플레이가 좀 살아났습니다.

박주영은 경기 직후 “못 이겨서 아쉽네요”라고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기자석이 워낙 낮은 데 있고 거기다 철망까지 쳐 있어 경기장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경호가 박주영에게 백패스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니 쟤가 미쳤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골대 바로 앞에서 툭 밀어넣으면 될 걸 뒤로 빼주나 싶었거든요. 나중에 알아보니 각도나 위치상 정경호가 슈팅할 상황이 아니었답니다. (경호야, 미안해. --;)

경기 내용보다 응원전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한국 응원단이 입장하자 우즈벡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습니다. ‘지옥에 어서 오세요’라는 한글 문구와 ‘Korea dream won’t come true this time’ 플래카드(사진)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도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한 우리 응원단은 전혀 기죽지 않고 힘찬 응원전을 펼쳤습니다. 다양한 응원 구호와 노래, 휴지폭탄 등은 여기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우즈벡 관중도 국기를 흔들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사진) 기세를 올렸습니다. 특히 파도타기 응원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 10배는 빨리 쉭쉭 돌아갔습니다.

경기 전 중앙아시아 문화 기행 중인 김지하 시인을 만났는데 “중앙아시아에 우리 문화의 원류와 흡사한 내용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어요. 오늘 응원에서도 그런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고 싶습니다”라며 원로 시인다운 시각을 보여줬습니다.

우즈벡이 선취골을 넣자 경기장 분위기는 극도로 달아올랐습니다. 종료 직전 동점골이 터지자 누가 공포탄을 쐈는지 기자석 근처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각오했던 대로 물병과 오물 몇 개가 날아들었지만 다행히 맞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매우 아쉬워 하면서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취재진을 향해 “역시 한국은 강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저는 대표팀과 함께 5일 쿠웨이트로 넘어갑니다. 우즈벡전에서 승점 3점을 얻지는 못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타슈켄트에서 재밌고 아쉬웠던 기억을 뒤로 하고, 쿠웨이트에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정영재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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