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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 족보 밝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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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과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를 끌고 있는 구상나무. 왼쪽은 국립수목원이 영축산에서 찾아낸 자생종이고, 오른쪽은 포천 평강식물원이 영국에서 들여온 원예종이다. [사진 국립수목원·국립생물자원관]

한라산·지리산·덕유산 등 해발 5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수려한 모습으로 7~8m까지 자라는 구상나무. 학명(Abies koreana)에 ‘한국’이란 단어가 들어 있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하지만 1904년 유럽 학자가 한라산에서 채집해 해외로 반출한 이후 크리스마스트리로 개량돼 외국에서 더 유명해졌다. 한국 특산종이지만 로열티 한 푼 못 받는 처지다.

 구상나무의 잃어버린 ‘생물주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은 국내 구상나무 ‘야생종’과 해외에서 원예용으로 판매되는 ‘개량종’의 유전자를 비교하는 연구에 들어갔다고 13일 밝혔다.

 연구팀은 우선 경기도 포천 평강식물원이 보유한 원예용 구상나무 3그루에서 시료를 채취, 야생종과 유전자를 비교·분석하고 있다. 평강식물원의 구상나무는 영국 에든버러 식물원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해외에서 구상나무를 들여오거나 시료를 추가 확보해 분석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연구팀은 국내 야생종의 유전적 특징을 나타내는 유전자 표지 6개를 선정했다. 해외 구상나무의 유전자와 비교하면 한국 어느 지역에서 반출됐는지 알 수 있다.

 곽명해 연구관은 “유전자 표지 분석은 과학수사에서 유전자로 범죄자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하나가 아닌 6개의 표지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해외 구상나무의 조상이 국내 야생종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더라도 당장 외국의 구상나무 재배자들에게 로열티를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생물 유전자원을 활용해 얻은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나눠가지도록 하는 ‘나고야 의정서’가 지난 12일 발효됐지만 구상나무가 반출된 것은 100여 년이 넘는 옛날 일이기 때문이다.

 생물자원관은 ‘미스킴라일락’이나 비비추의 유전자 분석도 할 계획이다. 1947년 서울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집된 털개회나무는 조경수로 번식돼 ‘미스킴라일락’이란 이름으로 미국 라일락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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