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측근' 발언 실세그룹 대결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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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에 대한 당정관계 재정립 주장으로 시작된 당정간 갈등이 이해찬 총리의 '대통령 측근' 발언을 계기로 여권핵심부내 감정대결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총리는 2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조찬강연에서 "지금이 이른바 (대통령) 측근이나 사조직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한 건 해야겠다는 세력이 생길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최근 열린우리당내 노무현 대통령 측근 그룹이 각종 구설수에 오르내리는데 대한 '옐로카드'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경고를 받은 쪽에서 꼭 하루만에 '응사'가 이뤄졌다. 대통령 측근 그룹의 '맏형'격인 염동연 의원이 고강도 발언으로 이 총리를 정면 으로 공격하고 나선 것.

염 의원은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총리야말로 참여정부의 영광과 권력을 다 누린 실세 중의 실세이고, 측근 중의 측근"이라며 "그런데 대통령의 측근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런 말을 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염 의원은 또 이 총리에 대해 '경거망동', '품행' 등의 단어를 사용해가며 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염 의원의 거친 비판은 최근 대통령 측근그룹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데 대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정부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당내 기류와도 무관치 않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당내 여론이 확산되지 않았다면, 당 지도부인 염 의원이 불필요한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실세총리'로 불리는 이 총리를 공개 비판하지는 않았으리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당정간 갈등이 고조된 데에는 이 총리의 책임도 상당하다는게 우리당 의원들의 판단이다.

이 총리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문희상 의장 등 당 지도부가 긴밀한 당정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각 부처는 우리당 개별 의원들의 의견이 다양해 협의의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당 정조위나 상임위에서 구심점을 잡아달라"며 오히려 당 책임론을 거론해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당정이 정면충돌 국면으로 향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데 대해 청와대도 우려를 표명하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이 당정간의 갈등으로만 그치지 않고,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전체의 자중지란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당 일각에서는 여권의 위기탈출에 대한 해법으로 청와대 인적쇄신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촉진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총리가 일반론을 얘기한 것"이라는 총리실의 해명이 있었던 만큼 오해가 해소됐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날 염 위원의 정면비판이 이어진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우선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 여러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일반론을 이야기한 것이지 실제 사조직이 있어 이를 경고하고자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는데 답답하다"고 말하면서 "염 위원이 총리실측의 해명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이뤄진 것 아니겠느냐"며 "오늘 당.정.청 워크숍이 예정된 만큼 이 총리의 발언을 둘러싼 오해가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의 당사자인 이 총리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설지 불투명하고, 염 의원도 이날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오해가 조속한 시일내 해소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도 "이총리가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염 의원의 비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응할 게 없다"고 잘라말했다.

디지털뉴스센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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