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81 사건 그후의 이야기들|경산열차 추돌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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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죄값을 치르고 있는 처지에 무슨 할말이 있겠읍니까. 엄청난 사고를 낸데 대한 악몽을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숨진 승객들에게 죄스럽기만 하고 나자신이 살아 있다는게 한스러을 뿐입니다.』
52명이 숨지고 2백44명이 중경상을 입업던 경산열차추돌사고 (5월14일)의 302호 보통급행열차기관사 박이종씨(44). 그는 금고 5년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박씨뿐 아니라 경산철도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제116호특급열차기관사 문창성씨(46). 보조기관사 이재문씨(47), 여객전무 김암우씨(34)등도 대구지법에서 각각 금고 5년을 선고받았고 사고직전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철길에 버렸던 구토웅씨(38·전고산면산업계장)는 징역l년6월을 선고받고 모두 항소중이다.

<15명은 병상서 신용>
참사의 제1차 책임이 있는 구씨는『나때문에 엄청난 참사가 빚어졌다는 사실에 지금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때 자살도 결심했으나 갇힌 몸이라 어떻게 죄값을 치러야 할지…』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는 최근 감방에서나마 속죄의 기도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당시 이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황해중철도청장과 임백무 부산지방철도청장·반경남 부산기관차 사무소장은 지금까지 집에서 칩거중이다.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도 철도사고사상 유례없는 최고액을 기록했다.
사망자 52명의 유족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총 10억2천6백만원. 1인당 평균 2천만원꼴이나 사망자 가운뎨 이기태씨(33·라이프주택대리·서울중곡2동43)의 경우 호프만식 계산으로 5천7백69만원이나 지급됐다.
부상자들 가운데 15명은 불구가 돼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고있다.
경북대의대부속병원210호실에서 7개월째 입원치료중인 손화자양(25·대구시효목동477)의 경우 아코디온처럼 찌그러져 내려앉은 객차의 천장에 짓눌려 양쪽 팔이 찢겨지고 얼굴과 온몸이 으깨져 만신장이가 됐다.
3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마비된 신경을 살리지 못해 반신불수가 되었다.
약혼을 앞두고 부산친척집에 다니러가다 참변을 당했던 손양은 약혼자로부터도 외면당했고 그 충격으로 정신마저 이상해졌다.
손양은 의사나 간호원을 대할때마다「살려주세요. 시집가게 본래의 나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울부짖어 보는이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다.
엄청난 철도참사가 빚어진지 7개월, 마의 매호건널목은 총경비 1억원을 들여 높이3m, 길이 1백20m의 철책으로 둘러 완전히 폐쇄되었고 철도아래는 높이4m, 폭4m, 길이 16.5m의 지하도가 뚫려 각종 차량과 행인들이 당시의 악몽을 잊은듯 무심히 오가고 있다.

<접속운행 개선안돼>
경부선철도 위로는 이따금 각종 열차가 사고지점을 통과하면서 긴 기적을 울릴뿐 이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매호건널목은 사고당시 행정구역이 경산군고산면매호리였으나 지난7월 직할시로 승격된 대구시에 편입, 대구시도성구매호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매호건널목은 15도정도 굴곡진 커브인데다 높이 1백m의 숲이 무성한 야산인 우산이 자리잡고 있어 상행선 열차의 시야를 가리는등 탈선의 위험이 지금도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언젠가는 야산을 헐어서라도 시야를 틔우고 굽어진 커브철로를 곧게 펴야만 제2, 제3의 대형참사를 막을수 있다는 것이다.
경산사고후 철도당국의 기관사들에 대한 안전수clr교육은 강화되었으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연속접속운행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김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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