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290)할아버지 상투자르라는 명령, 주재소에 가서 무마|"자식은 역시 서울에 보내야"…칭찬 대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선전 초입선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32년 초여름에 갑자기 집에서 건갈이 왔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잠깐 다녀가라고만 했을뿐 자상한 내용이 없었다.
선전(11회)이 열리고 있는 중이어서 좀 미적미적하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웬 영문인지 몰라 황급히 달려가지않을 수 없었다.
집에 가면서 나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했다. 서울공부 1년의 기한을 넘겼기때문에 소환당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나의 상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아버님(장수영)은 내가 선전에 입선한 것을 격려하면서 더욱 절차탁마(절차탁마)하라고 일렀다.그러고는 한숨을 쉬면서 『이제 우리집은 망하게 됐다』고 땅이 꺼지게 걱정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주재소에서 강제로 할아버지(장석인)와 아버지의 머리를 깎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강제 삭발령이 내려져 있을때었다. 우리집은 유학에 젖어 「신체발노는 수지부모」여서 머리카락 한개도 함부로 할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우기 선비가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펄펄 뛰고있었다.
아버지 말씀인즉 네가 이포주재소에 찾아가서 잘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도 주재소에 가기가 싫었지만 할아버지·아버지가 저처럼 걱정하시는 걸보고는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서 흥천면 이포주재소에 찾아가 일본인소장을 만났다.
이 소장은 한국사람에게 퍽 성가시게 굴던 사람인데도 그날은 이상할 정도로 고분고분했다.
내가 외사리에 사는 장우성이란 사람인데 할말이 있어 찾아왔다고 했더니, 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아, 장선생-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축하합니다』하고는 나의 선전입선을 아는체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나는 지혜를 짜서 서투른 일본말로 민심을 들고 나왔다.
우리집안 어른들뿐 아니라 외사리사람들은 모두 유학에 밝은 분들이고 나이도 연만해서 이제 새삼스럽게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오히려 민심에 역효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으니 묵인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유도했다.
주재소장은 뜻밖에도 선선히 내 말에 동조의 뜻을 보이면서 잘 봐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집안 어른은 물론, 동네사람들까지도 내가 대단한사람인 것처럼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역시 자식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면서 『다시 서울로 보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키는게 어떻겠느냐』고 부추겼다.
할아버지께서는 이왕 신학문을 할 양이면 한문을 바탕으로한 대국(중국)말을 배우라고 아버지에게 이르셨다.
훗날 할아버지의 뜻을 기려 우리 형제가 그분의 유고를 정리, 문집(만악헌유고)을 만들어 드렸다.
나는 얼마간의 학자금을 받아가지고 다시 서울에 와서 내가 다닐 학교를 찾아나섰다. 그때 마침 수표다리 건너왼편 막다른 골목에 조선교육협회에서 운영하던 육교한어학교가 있었다.
이학교는 월남 이상재씨와 유진태씨가 합심해서 새운 중국어학교였다.
월남선생은 선성이 자자하던 독립지사여서 그분이 세운 학교라면 물어볼 것없이 좋은 학교일 것같아 냄큼 입학원서를 내고 그다음날부터 학교에 다녔다.
월남은 이무렵 종로경찰서 일인형사가 뒤따라 다니면서 감시했는데도 어찌나 유머가 퐁부했던지, 형사가 감기때문에 고생한다고 했다가 『그 감기는 대포로 쓸수없나』는 말로 꼬집었다고 시원해했었다.
이학교 원장도 역시 독립운동가이던 안필중씨가 맡아서 했다.
교사는 연전교수이던 오규신, 중국에 오래 가있던 유정렬씨등 한국인과 중국인교사로 조수정씨가 있었다.
야학 1년코스의 육교한어학교를 졸업할 때쯤 해서 나는 제법 중국말을 할수 있었다.
졸업장을 받던 날 수표교 근저 관철동니궁안에 있던 중국요리집 대관원에서 사은회를 열었다.
대관원은 오래되어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닳아 훔이 팰 정도였다.
사은회 석상에서는 절대로 우리말을 쓰지않는 불문율이 있어 선생과 제자는 물론, 동참생들끼리도 중국말로만 대화를 나눴다.
그날 헤어진 동창생중 계리사로 있는 이<오씨를 얼마전 내 화실이 있는 광화문 자보빌딩 현관에서 만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닌 성 싶다.
어디서 많이 본사람 같다고 생각만 났지 확실히 잡히질 않아 실례가 될까봐 그냥 지나칠뻔 했는데 이태준씨가『어, 이거 장선생 아니쇼』하고 인사하는 바람에 나도 연장작용이 일어나『이태준선생, 참 오래간만이오』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