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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석조전 소화기의 센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6호 04면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불리던 시절, 덕수궁에는 가을이면 국전을 보러가곤 했습니다. 미술관 옆에 있던 석조전을 보면서 저긴 뭘까 궁금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한제국 광무황제(고종)의 공간으로 쓰기 위해 1898년 영국인 J.R. 하딩이 설계한 멋진 돌건물이죠.

그 석조전이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문화재청이 5년간 141억 원을 들여 복원했습니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로 즉위한 사실을 선포한 1897년 10월 13일을 기념해 13일 개관식을 할 예정입니다.

7일 기자 간담회를 마치고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어수선한 사무실과 로비로 쓰이던 공간이 비로소 제모습을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했습니다. 가구와 벽지, 장식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도 좋았지만, 제 눈에는 소화기가 먼저 보였습니다. 보통 건물 구석에는 어디나 시뻘건 소화기가 놓여있게 마련인데, 여기는 달랐습니다. 베이지색 벽면과 같은 색으로 돌출 간판을 세우고 그 뒤에 은색 소화기를 숨겼더라고요. ‘여기 소화기가 있다’는 표식은 하되 너무 튀지않게 주변과 색을 맞추려는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소방법에 맞는 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성들여 복원한 근대식 공간에 시뻘건 소화기가 미관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한 그 누군가가 고마웠습니다. 우리 국민의 문화 의식도 이제 이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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