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라는 말의 기원 3000년 전 설형문자에 기록 본래 뜻은 ‘비유럽’인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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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21면

막판에 북한의 벼락 손님들까지 방문해 화제가 된 아시안 게임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에도 의외의 질문이 돌아왔다. “정 부장, 아시아란 말이 무언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5> ASIA와 亞細亞

아시아. 영어로 Asia. 한자로는 亞細亞. 그 이상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변명이 아니라 다들 그랬을 것이다. 지구촌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아시아인 중 인천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동안 아시아란 말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시아라는 말은 기원전 3000년 설형문자에도 찍혀 있었지.”

“그렇게 오래됐나요?”

“아카드(Akkad)말의 아슈(ASU)는 해가 뜨는 동쪽 땅을 의미하는 말이었어. 그게 그리스로 흘러들어가 아시아란 말이 됐지. 해가 지는 서쪽 땅은 에레브(EREBU)야. 그게 오늘의 유럽(Europe)이 된 것이고.”

놀라워하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별거 아냐. 구글에 들어가 몇 초만 두드리면 다 나와. 당장 쳐봐요. 헤카타이오스(Hecataios)라고, 왜 그리스의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여행가 있잖아. 화상검색도 해봐요. 옛날 지도가 나올테니.”

정말이다. 2300년 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세계 지도를 복원한 그림이다<사진>.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위에는 ‘EUROPE’ 아래에는 ‘ASIA’라는 말이 선명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동서가 아니라 남북으로 배치해 놓은 것이 다를 뿐이다. ‘LIBYA’란 말도 나와 있다. 아프리카 대륙일 것이다.

아, 그 옛날부터 이 지구에 유럽과 대치되는 아시아라는 것이 있어 왔구나. 그런데 아시아인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부르고 멋대로 말뜻을 확장해 오늘의 아시안 게임이 인천에서 벌어졌다.

“저는 한자말 ‘亞細亞’를 영어로 표기한 것이 ASIA인줄 알았습니다.”

“그 반대지.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선교사로 중국에 와 있을 때 한자말로 번역한 것이지. 서양 사람들이 이름 붙여주고 애프터서비스까지 한 셈이야.”

유럽을 구라파(歐羅巴)로,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기하(幾何)란 말도 그가 다 번역한 한자어란 것이다.

“그런데 정 부장. 아세아라는 말에는 ‘가늘 세(細)’자가 들어있는데 대명이든 대청이든 대(大)자 좋아하는 그들이 그걸 자기네들 사는 땅 이름이라고 생각했겠어? 아세아라는 오랑캐 땅의 서양 이름으로 알았겠지. 거기다 일본 사람들 역시 근대화를 하면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쳤으니 그들에게도 아시아란 없지. 침략 대상으로의 대동아가 있었을 뿐이지.”

결국 아시아란 말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 땅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두루뭉수리로 확대 재생산한 말이니 아시아인의 정체성이 생길 리 만무하다. 아시아는 유럽인의 가슴과 머리에만 있고 막상 아시아인의 염통에는 없는 말인 셈이다. 기자 본능으로 한국의 메달 수만 셈하던 머릿속에 또 다시 벼락이 떨어진다.

“정 부장, 비행기 몰 줄 알아?. 나침판 바늘을 동남아 방향으로 놓고 날아가 봐. 타이가 아니라 타히티가 나올 걸.”

이번엔 웃음 대신 부아가 치밀었다. 한국에서 보면 동남아는 분명 서남쪽에 있는데 왜 동남아라고 불러야 했나. 스포츠란 것도 따지고보면 희랍에서 온 것이 아닌가.

룩(Look) 아시아!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신의 높이 뛰기, 기술의 빨리 뛰기, 부정의 장애물 넘기-.

“이 경주에서 이기려면 젊은이들이 독수리의 눈과 개미의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해. 우리가 무심히 쓰고 있는 작은 단어 하나에도 앞으로 우리의 운명이 걸릴 수 있거든.” 이 교수의 결론이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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