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시중 비서」아닌 든든한 보좌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빠르게 전달하고 정확히 이해되어야 하는 거대한 정보의 홍수속에서 어떠한 분야에서든 전문인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적 욕구의 하나로 속기가 채택되기 시작했다.
민첩한 손의 동작과 날렵하게 써 내려가는 낯모를 부호들로 어떠한 속도의 언어든, 아무러한 내용이든 모두 하나의 속기부호로 재빨리 탈바꿈된다.「O ⒜(ai)~(b)⌒(d)o(e)」이런 영문속기부호를 마음대로 다스려 나가는 영국 차더드은행 한국지점장비서겸 입사경력6년의 베테랑 임영신씨(30)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일반적으로 여비서의 업무는 「차나르기, 전화받기, 약속메모하기, 서류전달하기」등 단순능력에 한정되기 쉬우나 「영문속기비서」의 역할은 업무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주조로 서류를 통한 「상사의 든든한 보좌」라는 작업으로 그 양파 질이 확대된다.
『외국인 상사를 모신 비서는「일하는 시간엔 철저히 일하는 불문율」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의 과제입니다. 시간의 근무가 많은 시중은행과는 달리 출퇴근이 정확히 아침 9시30분, 저녁 5시30분으로 지켜지는 만큼 근무시간에는 철저하게 일해서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외국인은행에 근무하는 실무자로서의 임씨의 지적이다.
그녀의 일과는「지점장의 스케줄 확인, 서류준비, 일의 업무량 결정, 파트별 결재서류확인, 영문서신 회신」등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이러한 업무를 보다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 능숙한 타이핑과 속기실력. 그녀는 지금 1급 속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국문·영문을 따질 것 없이 속기에 학력은 그다지 구애되지 않고 고졸정도면 누구나 가능하다. 속기는 철자가 아니라 발음으로 기록되는 것이므로 영문속기의 경우 19개의 발음부호만 있으면 모든 의사전달이 이루어진다.
결국「속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재능이나 머리가 아니라 연습을 통한 숙달과 인내만이 최선의 길인 것이다. 영문속기가 실생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속기만으로는 이용가치가 없고 「듣기·말하기·문장해석· 어휘력증강·타이핑」등 5가지가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두 달에 한번씩 한국속기협회에서 실시하는 속기사자격시험은 1분에 40자를 받아 써 95점이상을 취득한 경우 8급, 1분에 1백30자를 받아 써 95점이상을 받은 경우 1급 자격증을 얻게되어「고급비서급수」로 인정되고 있다. 1급에서 단까지 이르면 국제회의에 참석해「전문속기사」로 근무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임씨는 『제가 영문 속기비서로 근무하고 있지만 실제업무에서 중요한 것은 속기사자격증보다도 속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외국인 은행처럼 바쁘게 전개되는 업무량을 훌륭하게 처리해 나가는 수단의 하나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떠한 분야에서든 전문인의 위치는 확고부동한 것이니까요』라고 이론과 실제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소득면에서 보면 임씨는 일반비서직 수준보다 15만원정도 높은데, 이에 대해 임씨는 『일한만큼의 댓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75년 숙대 영문과출신인 임씨는 작년에 회사원인 양완석씨(32)와 결혼, 8개월15일된 아들을 둔 어머니이기도하다.
「능력있는 직장여성, 사랑받는 며느리, 사랑스런 아내, 부끄럽지 않은 어머니」라는 4가지 역할을 모두 잘해내고 싶은, 내일을 사는 한 여성의 소망이 마냥 풋풋하게 전해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