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호주 미인들은 제 옷 입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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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디자이너 이화숙씨가 지난해 미스 유니버스 대회 우승자 제니퍼 호킨스가 입었던 드레스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래쪽 사진은 이씨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호킨스(왼쪽)와 지난해 미스 틴 인터내셔널 우승자 로린 이글(오른쪽).

31일 오전 태국에서 세계 최고의 미녀를 뽑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열린다. 미스 코리아 김소영씨 외에도 두 사람을 더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미스 유니버스로 왕관을 물려줄 호주 출신 제니퍼 호킨스와 이번에 미스 호주로 출전한 미셸 가이다. 둘 다 한국인 디자이너가 만든 이브닝드레스를 입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디자이너가 이화숙(43.예명 보라.호주 브리스번 거주)씨다. 지난해 말 '미스 틴 인터내셔널'(15~19세 대상)이 된 로린 이글도 대회 때 그의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다.

"호킨스의 경우 너무 바빠서 옷을 못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직접 e-메일을 보내왔더라고요. 가이도 이브닝드레스만 해주려고 했는데 민속의상까지 해달라고 하고…. 사실 호주엔 민속의상이랄 만한 게 없잖아요. 불현듯 (호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가 떠올라 아이디어를 줬죠."

그는 최근 호주 미인대회 출전자들로부터 협찬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대회마다 7~8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진 건 지난해 미스 유니버스 대회 때 호킨스가 입었던 드레스가 호주 언론의 각광을 받으면서다. <본지 2004년 6월 5일자 25면>

"당시 제 패션쇼에 섰던 호킨스가 미스 호주가 된 뒤 이브닝드레스를 협찬해 달라고 찾아왔어요.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첫눈에 '별로'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웬걸, 막상 그 드레스를 입혀봤더니 빛이 나는 거예요. 결국 미스 유니버스까지 됐지요."

대회가 끝난 뒤 그 드레스를 사고 싶다는 e-메일을 1000여 통이나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팔지 않았다. 사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그는 호주 퀸즐랜드의 한 패션 디자인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 드레스를 만들었다. 2연패를 노린 회심의 역작이었다고 한다.

"6개월 걸려 만들었는데, 그 기간에 한 번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장거리 출장을 갈 때도 10㎏이 넘는 그 드레스를 갖고 다니며 비행기 안에서도 바느질을 했지요.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든 건데 정작 원하던 대회에서 상을 못 받았어요. 사흘간 드러누워 앓았지요. 아쉬움이 커서 그런지 팔지 못하겠어요."

그 드레스는 상복이 없었을 지 몰라도 그 드레스를 입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타덤에 올랐다. 호킨스가 입기 한 달 전에도 호주의 유명 앵커가 그 옷을 입고 영화제에 등장해 호주의 패션지를 도배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이씨는 미국 유학 중 만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41)과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아가던 서른다섯 살 때 패션공부를 시작했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남편에게 "우리 (외)아들 옷이라도 만들어 주려고 한다"며 2년제 대학(TAFE)에 들어갔다. 졸업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1년쯤 공부한 뒤 1999년 말 브리스번에 의상실을 냈다. 중국 상하이에 이어 최근 한국(갤러리아 백화점)에도 매장을 낸 그는 "호주에서는 인정받았지만 (그걸로 만족하기에는) 뭔가 허전했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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