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17. 메달 없는 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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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1970년대 MBC '웃으면 복이 와요'의 인기는 대단했다. 코미디 프로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눈 앞의 백지수표-. 망설이던 끝에 대답했다. "뜻은 알겠지만 받을 순 없습니다." 정중히 거절했다. 조금 전에 MBC 사람들이 다녀간 터였다. 그렇다고 MBC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놓고 돌아갔다.

MBC가 배삼룡에 매달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청률 경쟁이나 TBC와의 자존심 대결 때문만은 아니었다. MBC는 놀랍게도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MBC에 결별을 선언한 뒤 '웃으면 복이 와요'에 3회가량 빠졌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TV를 보던 박정희 대통령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배삼룡이는 왜 안 나오지?" 그래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즉각 MBC로 자초지종을 묻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의 위력은 막강했다.

결국 MBC는 '절대 배삼룡을 놓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청와대'를 절묘한 카드로 활용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거요?" "TBC로 간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누릴 거라고 생각하나 보죠?" 반 협박조였다.

솔직히 난 겁이 났다. 청와대의 한 마디에 하늘을 날던 새도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또 작심하고 달려드는 방송사를 상대하는 것도 두려웠다. 당시에는 연예 기획사도 없었고, 매니저도 없었다. 아무리 톱스타라도 철저한 개인에 불과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는 심정이었다.

결국 나는 MBC행을 택했다. 언론에선 하나같이 'MBC의 승리'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백지수표와 청와대에 얽힌 뒷얘기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TBC에서도 연락이 끊겼다. '백지수표를 거절했으니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듯 싶었다.

TBC의 김경태 PD는 나 대신 서영춘(1986년 작고)씨를 캐스팅했다. 당시 그는 코미디언 활동을 잠시 접고 1년 정도 쉬던 참이었다. TBC는 코미디 프로의 전면에 서영춘씨를 내세웠다. 순발력이 뛰어났던 서영춘씨는 특유의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서영춘입니다"를 유행시키며 톱스타의 자리로 껑충 뛰어올랐다.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나로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1주일간 바람을 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MBC로 출근했다. MBC에선 대환영이었다. 백지수표까지 마다하고 온 내게 MBC는 한풀 꺾고 들어왔다. 대접도 달라졌다. 출연료 등 모든 면에서 1등 대우를 해줬다.

납치극 소동. 그것은 내게 '훈장'이었다. 메이저 방송사가 달려들고, 백지수표가 등장하고, 간접적이지만 청와대까지 끼어든 해프닝이었다. 최고가 아니면 결코 중심에 설 수 없었던 소동이기도 했다.

'메달 없는 훈장'에 내가 이토록 감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랑극단을 좇으며 보낸 숱한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의 혈관은 단역의 아픔과 무명의 설움을 또렷이 기억한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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