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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군사건「영구미제」로 처리될 뻔했다 (김정남 경감의 수기)|“여중근무때 수법”서 힌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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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윤상이를 제가 유괴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읍니다』
설마했던 주교사가 고개를 떨구며 범행을 자백하는 순간 3백83일간의 긴장감과 피로가 찬꺼번에 풀리며 몸이 하늘로 붕 뜨는 느낌이었다.
윤상군 유괴사건수사가 다시 활기를 띤 것은 지난 10월 중순부터였다.
1년 이상을 끌어온 이 사건이 해를 넘기면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것 같아 초조할때 서장님은 이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수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떠들썩했던 매스컴의 관심도 식은지 오래였고 매일 어김없이 한번씩 들르는 경서중, 마포고앞 유괴현장에서의 굳은 결의도 자칫 흐려져 가는 것만 같은 때여서 마지막 「결판」으로결심하고 뛰었다.
수사간부들이 윤상군 주변인물에 대한 집중수사만이 사건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결론을 내렸을때 문득 떠오른 용의자가 주교사 였다.
주영형교사. 윤상이가 유괴되던 날 외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윤상이가 선생님과의 약속이어서 틀림없이 약속장소에 갔으리라는 판단 때문에 초동수사때부터 집중수사를 받았던 주변인물이다. 범죄심리학자들도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친척들까지 다시 조사할 것을 권장하던 터라 사건전후 주에 대한 행적을 다시 캐기 시작했다.
10월말까지 보름동안 주에 대한 행적조사에서 10여가지의 의문점은 사건당일인 지난해11월13일 마포고등학교 앞에서 윤상이를 만나지 못하고 K대학원으로 갔다가 귀가하기까지의 2시간의 공백이었다.
더욱 석연치 못한 것은 윤상군이 선생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 사실이다.
이 사실은 윤상군 어머니의 기억에서 무엇인가 빠뜨린 것이 없는가를 다시 체크하는 과정에서『주선생이 지난해 11월부터 3차례나 윤상이를 밖에서 만나자고 했고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오랜 수사경찰관의 직감으로 주만이 사건해설의 열쇠를 쥔것으로 심증이 굳어졌다.
주에 대한 행적 조사는 고향인 광주에서도 계속됐다.
광주에서 11월6일부터 3일 동안 친척·동창등을 만나 주교사가 허세와 낭비가 심하여 빚에 쪼들린다며 돈을 빌려했고 지난 여름에는『윤상군 유괴사건의 용의자가 돼 괴롭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캐냈다.
이 같은 행적 조사에서 주에 대한 혐의가 짙어지자 수사요원들 사이에서 지난 4월 주가범인이라는 10대여학생의 전화 제보가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때부터 주가 재직했던 C여중제자들을 불러 조사했으며 주가 교외상담을 구실로 제자들을 꾀어 추행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교외상담」의 수법이 윤상이를 불러낸 경우와 똑같았다.
또 주가 79년에 아파트투기에 손댔다가 빚을 져 전세방을 전전하고 있으며 포커노름에 2백만∼3백만원을 잃어 대학동창·동료교사들로부터 돈을 자주 빌어쓴 사실도 드러나「돈과 유괴」라는 범행동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행적조사에 드러난 이 같은 정황말고도 지난달 10일 주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반응결과가 주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뒷받침했다.
도주방향, 윤상군이 끼었던 장갑등 8가지 설문을 놓고 거짓말반응을 검사한 결과 97.3%가 양성반응의 판정이 나왔다.
특히 윤상군이 마지막 외출 때 끼고 나간 별무늬가 새겨진 검은색 실장갑과 같은 모양의 장갑과 다른장갑 8개등 9개를 주에게 보이자 검은색 실장갑테스트에서 거짓말탐지기의 폴리그라프가 정상선을 넘어 요동, 주가 이장갑을 낀 윤상군을 만났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
이때 주는 검사실 실내온도가 섭씨30도 였는데도 몹시 춥다며 떨었다는 것이다.
결단의 순간은 온 것이다.
그동안의 주에 대한 행적조사와 범행동기추정보고서를 만들어 지난달 26일 남상룡서장에게 보고, 주를 연행해 강제 수사할 것을 건의했다.
남서장은 전담형사들의 사건추적 1년 동안 늘 관심을 기울이며 질책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호랑이 상사」였다.
망설이던 서장도 이 기회를 놓치면 영구미제로 남는다는 애원에 가까운 호소에 강제수사의 결단을 내렸다.
마침 2백만 달러사건에 매스컴의 촉각이 쏠린데다가 주말과 휴일을 이용하는 것이 강제수사보안에 안성마춤일 것 같아 지난 주말을 D데이로 잡았다.
27일 상오 11시. 종전처럼 학교로 주교사를 찾아가『만나자』고 했더니 처음에는 시간이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면 퇴근하기 전에라도 잠깐 만나자고 했더니 하오3시30분 학교 근처 호다방으로 나오겠다고 말했다.
이재무반장과 함께 먼저 가서 주교사를 기다렸다.
짙은 푸른색 체육복차림을 하고 주교사가 나왔다.
차를 마시면서『경찰수사가 계속되니 내 자신은 괜찮은데 교직자로서 체면이 안 선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주에게 『사건당일의 행적중 귀가시간 1시간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늘은 결론을 내리자』고 다그쳤다. 뜻밖이라며 긴장한 주는 교직자로서 말못할 사정때문에 알리바이를 대지 못했다면서 사건당일 K대대학원은 휴강이었고 하오8시께 학교에서 나와 이대앞 제과점에서 C여중 제자인 홍모양을 만나 맥주를 마시고 여관에 들었다가 하오10시30분쯤 헤어져 집에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홍양은 하루전날인 26일 이미 조사를 끝냈고 조사결과 지난해 11월9일부터 금년 4월사이에는 만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눈짓으로 함께 간 이 반장에게『연행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이날 저녁 경찰서 옆 삼계탕 집에서 주와 함께 식사를 하며 주가 낮에 말한 새로운 알리바이를 재차 확인했으나 주는 끝내 범행을 부인했다.
주를 서울 노고산동에 있는 은혜여관으로 연행했다.
주는 밤을 새워 28일 아침까지 1백여장에 이르는 진술서를 쓰며 끝내 범행을 부인했다.
29일 하오2시쯤 주를 옆방으로 불러내 기다리고 있던 홍양과 대질시켰다.
이때 홍양이 대뜸 「당신이 지난 4월 만났을 때 「재수없게 너 만난 날이 윤상이가 유괴된 날이라 의심받고있다」면서「이날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대들었다.
순간 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초조한 모습이었다.
주를 조사하던 방으로 다시 데려온 후. 탁자 위에 놓여있던 물 한컵을 갑자기 손으로 쳐 엎질렀다.
그러면서 이내 손으로 컵에 물을 다시 쓸어 넣으면서 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쏟은 물은 담을 수 있을 때까지는 다시 담아야 한다. 담는 방법은 바로 자수하는 것이다』말없이 앉아있던 주는 얼굴을 떨구더니『부모를 만나게 해달라』면서 모든 걸 털어놓겠다고 말했다.
순간 자백하라고 다그쳤다. 그랬더니『술이나 한잔 받아달라. 얘기하겠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하오6시가 가까워지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주가 말문을 열었다.
자백을 모두 끝낸 것은 30일 자정쯤. 주의 자백에 따라 상오1시30분쯤 공범 이양을 구로동 집에서 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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